자녀 볼모로 극단 선택 가족 범죄 잇따라
정부, 2019년부터 실태조사... 자료 미비
부모 죄책감 참작해 양형도 관대한 추세
"아이도 독립된 인격체"... 인식 전환 시급
# 생활고에 시달리다 연년생(8·9세) 두 아들을 목 졸라 숨지게 한 40대 여성 A씨. 자녀들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20일 서울 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 김동현)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의 생사여탈권은 갖지 않았다”면서 A씨의 죄를 엄히 봤다.
앞서 지난달 전남 완도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10)양 가족도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는 등 극단적 선택에 무게가 실리면서 더 이상 어린 자녀를 볼모로 한 가족 범죄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 사정으로 자녀의 생명을 취하는 ‘최악의 아동학대’”라고 비판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자녀'… 생활고 때문
두 사례가 아니어도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무관심하다. 통계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이런 유형의 범죄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다가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아동복지법이 개정된 2019년에서야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4건, 3건이 조사됐다.
그간의 실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가족살인범죄 보도를 분석한 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2000년부터 20년간 모두 426건의 극단적 선택 사건이 알려졌다. ‘동반 자살’로 검색된 경우가 352건(82.6%), ‘가족 살해 후 자살’이 74건(17.4%)이었다. 보도를 집계한 것만 이 정도다.
피해자도 대부분 어린 자녀였다. 전체의 절반을 넘는데(58.0%), 자녀만 피해자인 사례(41.1%)가 압도적으로 많고, 조양 사건처럼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포함된 경우가 16.9%였다. 보고서를 쓴 홍영오 연구원은 “일반화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지만, 부모는 ‘내가 죽으면 아이가 불쌍해진다’는 이유를 대며 자식을 살해한다”고 설명했다.
범행 동기 역시 생활고가 37.1%로 가장 많았고 처지 비관(25.2%), 금전 문제(13.8%) 등의 순이었다. 부모의 어려움 때문에 힘없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죄책감' 이유로 법적 처벌은 관대
반면 처벌은 관대했다. 2016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6년 동안 자녀만 죽고 부모의 극단적 선택은 미수에 그친 29건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징역 16년 이상의 중형이 내려진 판결은 5건에 불과했다. 4건은 집행유예 결정이 나기도 했다.
판결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는 ‘죄책감’이다. 피붙이를 죽였다는 평생의 후회가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범행 사유(경제적 어려움)를 감안하더라도 판결이 지나치게 가해자 중심으로 흐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피해자 자녀 입장에선 부모와 친밀한 관계라 범죄에 저항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데, 가해자의 죄책감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며 “죄책감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규정한 감경 요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기가정 사회안전망 구축 시급"
아동 전문가들은 결국 자식을 소유물로 당연시하는 부모의 그릇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의 강미정 아동권리정책팀장은 “부모가 아무리 절망적 상황에 처했더라도 자녀의 생명권을 함부로 다룰 권리는 없다”면서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시각이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극단적 선택이 자녀 동의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동반 자살’이란 표현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는 “동반 자살이라고 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며 “설령 동의를 얻었더라도 자녀의 자발적 의사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 원인 분석 못지않게, 위기 가정을 미리 찾아내 대처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 역시 절실하다. 강 팀장은 “해외에선 우리와 달리 어린이가 숨지면 진상을 철저히 파헤쳐 대책을 세우는 만큼, 제대로 된 데이터를 발굴해 한국형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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