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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위트... 봉준호 단편들의 위력

입력
2022.07.23 10: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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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싱크 앤 라이즈' '지리멸렬' 등 3편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 '싱크 앤 라이즈'(2003)는 한강변을 배경으로 매점주인과 노숙자 부녀의 사연을 펼친다. '괴물'(2006)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왓챠 제공

봉준호 감독의 단편 '싱크 앤 라이즈'(2003)는 한강변을 배경으로 매점주인과 노숙자 부녀의 사연을 펼친다. '괴물'(2006)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왓챠 제공

왓챠 바로 보기 | 3편 | 12세 이상·전체관람가

떡잎이 달랐다. 단편영화부터 눈길을 잡았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함께 일하려 눈독을 들였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단편 ‘백색인’(1994)을 보고선 봉준호 감독과 일할 기회를 엿봤다. 결국 최 대표는 1,300만 관객을 모은 ‘괴물’(2006)로 봉 감독과 협업한다. 봉 감독은 장편영화 감독이 되기 전부터 국내 영화계에서 스타 대우를 받았다. 2020년 오스카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은 젊은 시절 도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었기에, 왓챠가 최근 공개한 봉 감독 단편 3편은 대가의 싹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①봉준호가 전하는 삶의 반전

삶은 달걀은 물에서 뜰까, 가라앉을까. 설전은 곧 내기로 이어진다. 왓챠 제공

삶은 달걀은 물에서 뜰까, 가라앉을까. 설전은 곧 내기로 이어진다. 왓챠 제공

‘싱크 앤 라이즈’(2003)는 봉 감독의 단편 중 덜 알려진 작품이다. 노숙자로 보이는 부녀가 한강변 한 매점을 찾는다. 아빠(윤제문)는 딸(정인선)에게 과자는 빼고 뭐든 고르라고 한다. 딸은 어쩔 수 없이 삶은 달걀 꾸러미를 택한다.

아빠는 갑자기 어린 시절 추억 한 자락을 펼친다. 물놀이를 하다 물에 띄워 놓은 삶은 달걀을 간식 삼아 먹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매점주인(변희봉)이 “삶은 달걀은 물에 가라앉는다”며 끼어든다. 아빠와 매점주인은 내기를 한다. 삶은 달걀이 물에 뜨면 매점 과자를 원하는 만큼 딸이 가져가기로. 아빠는 꾸러미에서 꺼낸 달걀을 한강에 던진다. 주린 배를 잡으며 딸은 초조해 한다. 유쾌한 반전이 8분짜리 단편을 마무리한다.

②봉준호 월드의 시원

'싱크 앤 라이즈'는 한강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괴물'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왓챠 제공

'싱크 앤 라이즈'는 한강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괴물'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왓챠 제공

‘싱크 앤 라이즈’는 ‘괴물’을 닮았다. 윤제문이 노숙자를 연기하고 변희봉이 매점주인 역할을 맡았다. 철 없는 아빠와 똘똘한 딸은 ‘괴물’ 속 강두(송강호)와 현서(고아성)를 떠올리게 한다. 한강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은 ‘괴물’에서 일어날 괴변을 예고한다. 요컨대 ‘싱크 앤 라이즈’는 ‘괴물’의 전주곡인 셈이다.

5분짜리 단편 ‘프레임 속의 기억들’(1994)도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왔는데 반려견 ‘방울이’가 사라져 상실감을 겪는 어린 소년의 사연이 봉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연상시킨다. ‘플란다스의 개’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개들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③번득이는 재치와 비판

'지리멸렬'은 31분짜리로 4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멸렬'은 31분짜리로 4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멸렬’(1994) 또한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봉 감독의 단편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다.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대학교수와 신문사 논설위원, 검사의 이중적 행태를 그린다. 도색잡지를 몰래 즐겨 보며 고상한 척하거나 아침운동 중 남의 집 우유를 훔쳐먹는 고약한 습관이 있거나 노상에서 큰 볼일을 보는 인물들이 부도덕한 사회에 대해 개탄하는 모습을 담았다.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내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소시민의 삶을 대치시킨다. 3편의 단편엔 재치가 관통한다. 봉준호 월드의 매콤한 맛이 짧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뷰+포인트

‘지리멸렬’에서 대학교수는 도색잡지를 학생에게 들킬까 봐 멀리서 출석부를 던져 가린다. 귀퉁이들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출석부가 도색잡지를 정확히 덮는다. 특수효과가 변변치 않던 시절 빚어진 장면으로는 놀랍다. 봉 감독은 이 장면을 건지기 위해 반복 촬영을 했다고 한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시절이니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돈이 꽤 들어갔을 장면이다. 봉 감독의 집요함과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다. 대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한국일보 추천 지수: ★★★☆(★ 5개 만점, ☆ 반개ㆍ3편 전반에 대한 평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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