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긱스의 지적 여정 '고래가 가는 곳'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화제의 드라마에 무임승차하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덩달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놓고 관심이 커졌다. 반가운 일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서 드라마 속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도 주목 받으면 좋겠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고래야말로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생태계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먼저, 궁금증. 우영우가 항상 귀에 꽂고 다니는 헤드폰에서 울리는 고래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짐작하자면, 혹등고래가 부르는 ‘노래’일 가능성이 크다. 혹등고래는 고래 가운데서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내는 종이다. 놀라지 마시라.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는 바닷속에서 2,600㎞를 이동한다. (서울에서 필리핀 마닐라 사이의 거리다.)
대양 곳곳에서 고래가 내는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수천 ㎞씩 퍼지는 모습을 그려보라. 다수의 과학자는 고래 소리를 해양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상적인 배경음으로 여긴다. 고래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 마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배경음악이 갑자기 꺼지는 일과 같은 침묵이 바다를 습격한다. 바다 판 ‘침묵의 봄.’
고래는 죽어서 가죽이 아니라 심해 정원이 된다. 고래가 죽으면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서서히 가라앉아 수천 미터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이 심해에 사는 생물에게 고래 사체는 하늘이 내려준 종합 선물 세트다. 고래 사체는 심해의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원천이다.
심해 고래 정원은 기후 위기를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40톤의 고래 사체는 2톤 정도의 탄소를 해저로 옮긴다. 그 정도의 탄소를 다른 방식으로 해저에 쌓으려면 2,000년이 걸린다. 더구나 고래는 평생 먹고 싸며 바다의 유기물을 순환시켜 해양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돕는다. 고래 한 마리가 나무 1,000그루만큼이나 탄소를 흡수한다. 그래서 고래를 ‘부작용 없는 탄소 포집기’라고도 부른다.
우영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나오는 장면은 고래의 솟구침. 뜻밖에도, 과학자는 고래가 왜 그러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어떤 과학자는 고래의 공중 곡예가 몸에 들러붙은 따개비, 해조류 같은 귀찮은 것들을 떼 내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다른 과학자는 고래가 노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동족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우리는 고래를 모른다. 심지어, 어떤 고래는 그 존재 자체도 모호하다. 부채이빨고래는 독특한 뼈 일부로 그 존재를 추정하고 나서 140년간 딱 한 번 사체를 확인했다. 실제로 살아있는 부채이빨고래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랫동안 수많은 문헌 속에 등장한 다양한 바다 괴수의 정체가 대부분 고래였을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우영우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렇게 놀랍도록 흥미로운 고래 이야기가 리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에 나온다. 훌륭한 과학책이자 감동적인 생태 에세이인 이 책은 2021년 국내에 소개되고 나서도 반향이 없었다. 이참에 고래 좋아하는 우영우의 힘을 빌려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호주 저자가 쓴 책이지만 한국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온다.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은 8,000년 전 신석기 후기에 새겨진 울산 반구대 암각화다. 다행히 (일본을 제외하고) 여러 나라가 포경 금지에 동참하면서 대양에서 고래 개체 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고래는 인간이 원인을 제공한 또 다른 재앙 탓에 죽어가고 있다(7장). 답답하고 착잡하고 섬뜩하다.
끝으로 우영우가 널리 알려줬으면 하는 과학 상식 하나. 애초 육지에서 걷던 동물이 약 4,800만 년 전 어떤 계기로 바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가서 진화한 동물이 바로 우리가 보는 고래다. 이 신기한 진화의 과정을 자세히 살피려면 (저자 긱스도 참고한) 한스 테비슨의 '걷는 고래'를 읽어야 한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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