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에너지·공급망 협력...구체적 이득 없이 중러 갈등만
환율 안정도 성과 미미...통화스와프 옐런 소관 아냐
칩4 동맹 중국만 자극...답변 최대한 미뤄야
지난 19일 열린 한‧미 재무장관회의 결과에 대해 "한국에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는 경제전문가의 평가가 나왔다. 미국이 강력하게 원하는 에너지‧공급망 협력에 우리나라가 응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서 입을 타격은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이득은 뚜렷하게 계산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우리나라가 미국에 요구한 환율 안정은 한미 통화스와프 같은 구체적 성과를 끌어내지 못했다.
국내 증권사 최장수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2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번 회의 결과는 크게 4가지다. 두 가지는 미국, 한 가지는 한국의 요구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1월 취임 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미 재무장관이 한국을 찾은 건 2016년 6월 제이콥 루 장관 이후 6년 만이다.
그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나눈 한‧미 재무장관회의 결과는 크게 4가지다. 구체적으로 ①국제 에너지 공조를 통한 가격 안정 ②공급망 병목현상 해소 협력 ③미국의 글로벌리더십 지지 ④한미 외환시장 긴밀한 협조 등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도 그렇고 공급망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건 묵시적으로 어느 정도 얘기가 된 거 같다"면서 "문제는 그쪽으로 가면 중국, 러시아와 일종의 갈등 요인이 생기는 거라 손해가 어느 정도 난다는 건 아는데, 어떤 이득일지는 아무리 내용을 살펴봐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공급망 동맹 예견된 수순...대응 준비했어야
재무장관 회의 결과에서 언급된 ①에너지 공조는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을 말한다. 미국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인 원유 수출 억제를 위해 추진하는 제도로 옐런 장관은 추 부총리에게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에 한국이 적극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고, 추 부총리는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②공급망 병목현상은 방한 직후 방문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언급했던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옐런은 이 자리에서 "중국과 같은 독단적 국가들이 특정 제품이나 물질에 관한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며 "파트너와 동맹국 간 프렌드 쇼어링을 도입하고 더욱 굳건한 경제성장을 이뤄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형태(미국의 요구)는 이미 상당히 예상이 됐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미중 무역 분쟁하면서 그다음 수순은 기술분쟁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동맹과 함께 중국을 제재하자는 말을 많이 했는데, 프렌드 쇼어링은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평했다.
프렌드 쇼어링이란
2019년 미중 무역 분쟁 후 '세계의 공장' 중국의 자원무기화에 맞서 동맹국끼리 뭉치자는 '동맹 쇼어링(ally-shoring)'의 파생 개념. 지난해 4월 재닛 옐런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연설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끼리 공급망 프렌드 쇼어링을 강화하면 시장 접근을 안전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처음 등장했다. 싸고 효율적인 공급망 시장보다 안전한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부터 우리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통화스와프는 이번 회의에서도 뚜렷한 성과 없이 '협력'을 다짐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국가 간 통화를 맞교환하는 통화스와프는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약속한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들여올 수 있는 거래를 뜻하는데, 최근 원달러 하락이 이어지며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재무장관 회의 발표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명시 대신 '양국이 필요 시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를 두고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 주체가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인 까닭에 당초부터 재무장관 회의에서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 관리가 우리나라 기획재정부 장관 만나 '금리인상 부분 자제해달라'고 하면 기재부 장관이 뭐라고 하겠나. '우리가 얘기 한번 해 보겠다'고 하지 않겠나. 소관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고 질타했다
최고의 선택은 '보류'... 칩4 동맹 확답 최대한 미뤄라
이보다 우리 정부가 한미 통화스와프를 "워낙 원해서", 미국의 에너지‧공급망 협조 요구를 유인할 "좋은 건수"를 스스로 만들어줬다는 평가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스와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며 "명확히 들어주겠다고 말을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협상의 태도다. 말을 안 하면 얻을 게 많아진다"고 꼬집었다.
옐런 방한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문제 대응을 위해 추진 중인 '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칩4 동맹)' 회의 참석 여부를 다음 달 말까지 알려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은 한국, 대만, 일본 등 4개국 반도체 협력 확대를 위한 '칩4 동맹'과 관련한 실무자급 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마감 시한'은 공교롭게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지 30년이 되는 시점(8월 24일)이다. 일본과 대만은 회의 참석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이 중국‧홍콩이라는 현실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시장이 약해지면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도 힘들어진다. 중국도 (칩4 동맹에 한국이 참석하면) 독자적 생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상태인데 지금 당장도, 앞으로도 그런 큰 시장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스와프에 대한 미국 같은 태도'를 우리도 갖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확답도, 부인도 안 하는 게 가장 좋다. 바이든 중동 방문 때, 가장 남는 장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했다"며 "(석유 증산에) 확답도 부인도 안 하면서 양쪽(미국, 러시아)을 저울질했다"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