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파업 쌍용차, 노조에 손배소 제기
'강제진압' 경찰도 기물 피해 등 배상 소송
1·2심서 "노조 파업 불법, 47억 원 배상" 판결
경찰 인권침해사건 조사위 "소송 철회" 권고
인권위 "노동3권 위축 고려 판단해야" 의견
국회 '소송 취하 결의안' 통과... 대법원 판단 아직
"노사 간 온전한 갈등 해소에 걸림돌" 지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가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로 제동이 걸렸다.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와 별도로 파업 행위와 관련해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원·하청은 소 청구 취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한 것이다. 이처럼 파업 이후 노사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발목이 잡힌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9년 5월 사측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 총 77일 동안 장기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손해배상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노사 간 갈등과 후유증 해소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을 점거하며 강력 반발하자 사측도 용역을 투입하며 맞섰다. 서로 물러서지 않아 폭력 사태로 이어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경찰이 투입돼 강제 진압하면서 파업은 종료됐다.
이후 경찰은 쌍용차 파업 강제 진압과정에서 헬기와 기중기 등이 파손당했다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17억여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쌍용자동차 사측도 이듬해 파업기간 동안 생산 차질 등의 책임을 물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조합원을 상대로 약 100억 원 규모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쌍용차지부 노조의 파업은 목적과 수단에 있어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위법하다"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파업에 가담한 쌍용차지부 노조 등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노조와 조합원이 물어내야 할 배상금은 사측에 33억여 원, 경찰에 14억여 원이었다. 눈에 띄는 건 경찰이 청구한 금액은 대부분 수용됐지만, 사측이 청구한 금액 100억 원 중에선 약 30%만 인정됐다. 애초에 노조 측을 압박하기 위해 피해 규모를 과장했거나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것까지 무리하게 포함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 2심 판결에서도 노조와 조합원들은 패소했다. 사측에 대한 배상금은 33억여 원 그대로였고, 경찰에 대한 배상금만 11억6,000만 원으로 소폭 줄었다.
사측·경찰, 노조·조합원에 117억 원대 손해배상 제기
법원 판결에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로 또다시 노동3권이 '파업의 정당성 요건'이라는 하위법령에 의해 짓밟혔다"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이번 판결로 인해 해고노동자들은 더더욱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손해배상 소송 압박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도 나왔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철회를 주장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의 쌍용차 파업 진압을 공권력을 남용한 과잉 진압이라고 판단하고 소송 철회를 권고했고, 이듬해 민갑룡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경찰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경찰이 위법하고 부당한 강제진압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데도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당성이 결여됐다며, 노동3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다.
인권위·국회 "노동3권 위축 우려... 소송 취하를"
지난해 8월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국회의원 142명이 "집회 시위의 자유와 노동권을 헌법에 보장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권리행사를 공권력을 투입해 가로막고 그 비용을 손해 명목으로 청구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신중한 판단을 해달라는 탄원서"를 발표한 바 있다. 소송 취하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도 통과했다. 지난해 9월 예정됐던 대법원의 선고가 미뤄지며 쌍용차 손배 소송은 아직 진행형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진행 중인 쌍용차 사례에서 보듯, 사측이 노조와 노조원에 거액의 손배소 제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의 합법파업은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 33조(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에 따라 민형사상 면책이 된다. 다만, 불법파업은 면책 대상이 되지 않아 사용자가 업무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불법파업은 파업의 수단이 폭력이나 불법적인 사업장 점거를 수반한 경우, 혹은 법에 정해진 파업 절차, 즉 조정이나 조합원 투표 등을 거치지 않고 파업을 한 경우, 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되지 않은 경우 등이 해당한다.
노사 간 입장은 극명히 엇갈린다. 사용자는 손배·가압류가 무분별하고 폭력 등을 수반한 노조의 불법파업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일부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제도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불법파업에 대해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다면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폭력을 수반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주장이다.
"영국은 손해배상 소송액 제한... 외국은 손배 책임 경감 노력"
반면, 노동조합은 손배·가압류가 노동3권의 하나인 파업권을 부당하게 억제한다고 반박한다. 특히 파업의 정당성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인데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손배·가압류를 실시하면 당사자에게 극심한 재산상의 피해를 불러일으켜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법원 판결을 보면 손배·가압류가 원인무효가 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손배·가압류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연예인이나 지식인, 일반인들이 주축이 돼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캠페인(노란봉투·손잡고)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산업혁명의 고향 영국에서는 120여 년 전인 1901년 철도회사 노조의 파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1906년 노동당은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상 면책을 법으로 규정, 손해배상을 지렛대 삼아 노조를 통제하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은 현재 조합원 수에 따라 손해배상 소송가액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통상적인 파업권의 행사가 아닌 폭행, 파괴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만 인과관계를 엄격히 따져 인정한다. 독일의 경우 노조의 민사상 면책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노조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손해배상 소송이 노동자에 대한 보복과 위협 수단으로 악용, 남용되기도 하는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대전지법 최누림 판사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선진국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어떠한 방향으로든 경감하려는 시도를 해왔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