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절차 지킨 파업에 ‘불법’ 비난
합법파업 어렵고 기업은 손배소 압박
노사문제 '선택적 법치’ 갈등 낳을 것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산업현장의 불법상황은 종식돼야 한다.”(윤석열 대통령),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1조 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불황기 삭감됐던 임금복원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51일간 파업을 벌였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기간 동안 이들에게는 교섭에 소극적인 협력업체 말고도 맞서야 할 상대가 많았다. 무엇보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린 일이 뼈아프다. 밖에서는 “불법파업에 엄정대응하라”는 보수진영의 집요한 여론전이 압박이 됐다. 대통령까지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으레 ‘귀족노조가 웬 파업이냐’라는 카드를 꺼낸다. 하지만 연봉 3,000만 원 안팎의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에게 할 말은 아니었는지 이번 파업에는 ‘불법파업’이라는 비난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과연 이번 파업이 불법파업이었을까. 우리나라는 합법적 파업이 매우 까다로운 나라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37조)은 파업의 주체, 목적, 절차, 양태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청노조는 올해 22개 협력사와 임금ㆍ단체협약 체결교섭을 진행했다. 교섭이 결렬되자 조합원들의 무기명 찬반투표를 거쳐 정상적으로 쟁의권을 획득했다. 다만 건조 중인 유조선을 점거한 '옥쇄시위' 방식이 노조법 위반인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 봐야 한다.
정상적 쟁의절차를 밟았는데도 ‘불법파업’으로 비난한 이들의 속셈은 뭘까. ‘파업 노동자=법을 지키지 않는 자’로 낙인찍어 파업에 동조하는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이유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장기 파업으로 피해를 주는 노조에 책임을 묻자”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파업 노조에 책임을 물을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노조법은 정당한 파업에 대해 민ㆍ형사상 책임 추궁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작 법원은 파업의 ‘정당성’을 좁게 해석한다. 기업들은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방해죄 등으로 민ㆍ형사 면책조항을 우회해 노조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이번 파업 협상 막바지에 임금인상 요구를 거의 포기하는 등 손에 쥔 것도 없는 하청노조가 회사 측의 손배소송을 막느라 쩔쩔맨 건 힘의 균형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2006년 단 4일 동안 평화적 파업을 했다가 100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한 민주노총 철도노조의 김영훈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완벽히 법적 정당성을 갖고 파업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파업에 대해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같은 정규직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면 ‘이기주의적 투쟁’이라고 비난하고 대우조선 하청노조처럼 힘없는 노조가 대의명분을 갖고 파업을 하면 불법이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보수진영은 한 손에는 사회적 공감대, 다른 손에서는 합법성이라는 잣대를 들고 파업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고립시킨다. 이번 파업에서도 되풀이됐다. ‘가뭄에 왜 파업을 하느냐’며 어처구니없는 파업 비난 여론이 쏟아지던 20년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노조의 불법파업 등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제시했다. 회사 측의 불법행위도 방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파업이 발생하자 ‘불법파업’ 여론전에 나서는 모습은 우려를 자아낸다.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했던 역대 보수정부들은 칼날을 노동자에게만 휘둘렀다. MB정부는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쌍용자동차 쟁의를 진압했고 공무원 노조를 법외 노조로 만들었다. 한쪽 진영의 반짝 환호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후유증이 컸다. '선택적 법치주의'의 청구서는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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