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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방치됐던 미술관 옥상...'시간이 멈춘 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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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방치됐던 미술관 옥상...'시간이 멈춘 정원'으로

입력
2022.07.25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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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옥상 설치 작품 '시간의 정원'
건축가 이정훈 캐노피 구조물 공모전 통해 선정

MMCA 과천 프로젝트 '시간의 정원'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MMCA 과천 프로젝트 '시간의 정원'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최고층. 36년째 빈 공간으로 방치됐던 옥상에 거대한 흰색 캐노피(canopy·덮개) 구조물이 등장했다. 둥근 바닥 모양 그대로 위로 올린 지름 39m의 원형 통로다. 통로에 들어서면 안쪽으로는 아래층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오고 바깥으로는 푸른 산세와 저수지 풍경이 흡사 거대한 정원처럼 밀려든다. 두 개의 정원 사이를 걷는 동안 시간이 멈춘 듯 속세를 잊게 되는, 일명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이다.

시간의 정원은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과천 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으로 지난달 29일 공개됐다. 미술관이 야외공간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공간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해 과천 순환버스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에 이어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의 옥상정원이 공모전을 통해 올해 설치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 대표는 건축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반 시게루, 자하 하디드 등 해외 유명 설계사무소를 거친 건축가다.

출발은 이 대표가 처음 옥상에 왔을 때 봤던 난간이었다. 지난 22일 옥상정원에서 만난 그는 "90㎝ 높이의 나무 난간 위에 30㎝ 높은 스테인리스 난간이 덧대져 있는 점이 재미있었다"며 "건축법규가 바뀌어 증축한 것인데 그 점에 착안해 난간이 성장한다면 어떤 구조물이 만들어질지 상상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기존 난간의 배열에 맞춰 파이프를 40㎝ 간격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기존 건축물에서 자라난 듯한 형상의 통로를 만들었다.

시간의 정원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열린 캐노피 구조물은 원형 정원, 동그라미 쉼터 등 미술관의 내외부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시간의 정원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열린 캐노피 구조물은 원형 정원, 동그라미 쉼터 등 미술관의 내외부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구조물은 2.1m 높이의 입구에서 시작해 최고 4.2m까지 높아진다. 통로의 안쪽으로는 인근 산에서 서식하는 수목들로 꾸며진 2층 원형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바깥으로는 미술관을 둘러싼 청계산과 관악산의 능선, 저수지가 파노라마처럼 연출된다. 바닥에는 그날의 빛과 날씨, 바람에 따라 파이프 그림자가 드리워져 마치 해시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파이프 라인은 정면에서 한옥의 처마선처럼 위로 올려져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건축가는 전면부에서 보이는 비경을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캔틸레버(cantilever) 공법을 적용했다. 캔틸레버는 구조물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다른 끝은 지지하는, 기둥 없이 공중에 뜬 것처럼 연출하는 방식이다. 수십 개의 금속 파이프를 정교하게 배열해 원형을 만들고, 기둥 없이 안과 밖의 원을 팽팽하게 당겨 지탱하는 공정은 베테랑 건축가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현장 3D 스캐닝 방식으로 설계한 뒤 공장에서 모두 제작해 현장에서 숙련된 기술자가 파이프를 일일이 이어 붙이는 수공예적 방식으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건축가는 파이프 통로를 따라 양쪽 시야를 천천히 조망하다가 전면부에서는 구조물을 제거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마주할 수 있게 설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건축가는 파이프 통로를 따라 양쪽 시야를 천천히 조망하다가 전면부에서는 구조물을 제거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마주할 수 있게 설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건축가는 시간의 정원이 단순히 자연 풍경을 감상하는 휴게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 관람을 더욱 밀도있게 하는 장치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팁은 미술관 1층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多多益善)'부터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1003대의 브라운관 TV를 크기별 오층탑 모양으로 쌓아올린 다다익선은 2018년 2월 노후화로 전원이 꺼졌다가 5년에 가까운 복원기간을 거쳐 9월 15일 다시 가동된다. "내부 나선 램프를 오르면서 수십 년 세월을 간직한 작품을 음미한 후 시간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360도 길을 한 바퀴 천천히 걸은 뒤에 잠시 벤치에 앉아 정지한 풍경을 바라보세요. 미술관이 품은 시간이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올 겁니다." 시간의 정원은 내년 6월 25일까지 1년간 만나볼 수 있다.

과천=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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