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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 위 삶의 '마지막 파수꾼' CCTV, 다리 20곳 중 10곳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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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 위 삶의 '마지막 파수꾼' CCTV, 다리 20곳 중 10곳엔 없다

입력
2022.07.25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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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 실종된 가양대교 등 10곳 미설치
효과는 입증... 마포·서강대교 100% 구조
"극단 시도 많은 곳부터 CCTV 설치해야"

지난달 실종된 김모씨의 마지막 모습이 포착된 가양대교 남단.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한 생명의전화가 설치돼 있지만, CCTV는 없다. 뉴스1

지난달 실종된 김모씨의 마지막 모습이 포착된 가양대교 남단.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한 생명의전화가 설치돼 있지만, CCTV는 없다. 뉴스1

지난달 24일 서울 강서구 가양역 인근에서 실종된 김모(24)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가양대교 위에 서 있던 모습이 차량 블랙박스에 찍혀 마지막 행적만 겨우 밝혀졌을 뿐이다. 경찰은 블랙박스와 김씨 태블릿PC에서 발견된 메모를 근거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사와 실종 수색이 더뎠던 건 가양대교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탓도 컸다. 통계는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 선택을 제어하는 데 CCTV가 절대적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감시의 눈이 있었다면 김씨의 실종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CCTV 예방효과 입증됐는데... 설치는 절반

한강 다리에 설치된 CCTV는 이미 투신자 구조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소방재난본부는 2013년부터 ‘한강수난사고 긴급구조 CCTV 영상감시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다리에 멍하니 서 있거나, 난간 가까이 있는 사람을 관제사들이 다리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CCTV를 통해 발견하면, 곧장 구조대를 출동시키는 방식이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투신 시도가 많은 다리로 꼽히는 마포ㆍ서강대교는 2012년 56.1%였던 생존 구조율이 이듬해 95.0%로 크게 높아졌다. 올 상반기 구조율은 100%다. 투신으로 인한 죽음을 전부 막아냈다는 의미다.

CCTV의 위력이 입증되면서 2015년부터 다른 다리에도 순차적으로 설치됐다. 현재 재난본부가 관리하는 한강다리 20곳 중 10곳에 CCTV가 있다. 2019년부터 올 6월까지 전체 한강 다리에 2,21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2,156명을 구조했다. 평균 구조율이 97.6%로 100명이 투신 시도를 할 경우 97명 넘게 목숨을 구한 셈이다.

문제는 CCTV가 없는 다리도 여전히 절반이나 된다는 점이다. 가양대교도 그중 하나다. 이 다리는 한 명씩 사망자가 발생한 2019년과 2020년, 구조율이 각각 88.9%, 90.0%로 평균을 밑돈다. CCTV를 설치하지 않은 A다리도 사망자가 나온 2020년과 지난해 구조율이 각각 90.91%, 87.50%에 그쳤다.

한강교량 극단 선택 시도·구조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강교량 극단 선택 시도·구조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재난본부 관계자는 24일 “일단 다리에서 몸을 던지면 구조율은 뚝 떨어진다”면서 “극단적 선택 징후자를 먼저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한데 CCTV가 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다리에 자살방지 문구를 새기거나 난간을 높이는 등 여러 투신 예방책이 나왔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는 CCTV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AI 감시시스템도 CCTV 없으면 '무용지물'

CCTV의 위상은 올해부터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되면서 더욱 높아졌다. 기존에는 CCTV 수백 대를 관제사들이 일일이 들여다봤지만 이젠 다리 위를 배회하거나 1분 이상 신체가 난간을 넘는 사람이 있으면 AI가 먼저 감지한다. 관제사들은 AI가 선별한 CCTV 위주로 살피면 된다.

AI의 효율성은 수치로 드러난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재난본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람은 606명이다. 지난해 전체 규모(626명)와 비슷하고 2020년(474명), 2019년(504명) 수치를 이미 넘어섰다.

갑자기 투신 시도가 늘어난 게 아니다. AI가 이상 징후를 조기 발견해 전체 출동 건수가 증가한 결과다. 실제 이 기간 사망자는 3명으로, 2021년(13명), 2020년(18명), 2019년(20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그러나 다리에 CCTV가 구비돼 있지 않다면 AI도 ‘무용지물’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CCTV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산이 많이 필요해 모든 다리에 일괄적 설치가 어렵다면 극단적 선택 위험 지수가 높은 다리부터라도 CCTV를 우선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난본부 측도 “9월까지 8곳 중 3곳에 CCTV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며 “가양대교도 내년 설치를 위해 관련 예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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