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자에게 검찰의 대형 수사는 최고난도의 취재 영역이다. 경험으로 몸에 밴다는 취재 노하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단되는 수사 정보, 물 샐 틈 찾기 어려운 검찰의 방어막은 철옹성의 무쇠 벽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일단 검사실은 통로 앞부터 원천 봉쇄된다. 검사의 통화 기록은 철저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 힘들게 쌓은 친분을 앞세워 전화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와 냉대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낯선 음성, “이러시지 말라”는 야멸찬 답변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기자는 팩트를 포기할 수가 없다. 수소문해 찾아낸 취재원 집 앞을 서성이고, 혹시나 해서 자정 훌쩍 넘어 퇴근하는 검사를 붙잡아도 보지만, “수고하신다”는 말조차 듣기 힘들다. 예전엔 최후 수단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져도 봤지만, 파쇄기가 등장하면서 이마저 소용없는 짓이 됐다.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성과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1%도 안 되는 확률’을 기대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후배들이 ‘검찰 수사 어떻게 취재하냐’고 물어오면 난감하기만 하다. “코끼리도 이쑤시개로 계속 찌르면 쓰러진다”는 말 같지 않은 말(근데 나는 진심이다)을 건넬 뿐이다.
며칠 전 박범계 한동훈 전ㆍ현직 법무부 장관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속이 조금 불편했다. ‘그러면 안 된다’와 ‘너는 안 그랬냐, 너보단 낫다’는,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면 차라리 수준 높은 콩트였다고 칭찬해주고픈 공방 속, 박 전 장관의 말이 눈에 밟혔다. “티타임을 하겠다는데 법조기자들이야 좋아하겠지만 그 속에서 특종이 나올 것이고, 이는 검언유착을 강화하겠다는 소리”라는 비판 말이다.
검찰 티타임을 겪어본 기자라면 조금은 공감해줄 수 있겠다 싶다. “OOO은 언제 소환하냐”는 등 기본적인 질문을 해도 “수사는 생물과 같아서 앞으로 이 일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이 돌아오는 자리, "동물입니까? 식물입니까?" 같은 질문에 "유전자 검사 전이라 말할 수 없다"는 식의 스무고개 게임이 진지하게 이뤄지는 자리. 한편으론 검찰 수사 상황을 들을 유일한 창구라는 점에서 소중하지만, 정작 마치면 “기사 쓸 내용이 없다"고 한숨만 쉬는 그런 곳에서 뭐가 특종 거리고, 어떤 게 검언유착의 단서인지 전혀 모르겠다.
박 전 장관을 포함해 누군가의 머릿속을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 티타임이 열리면, 검사와 기자들이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모여 앉아, 검찰이 수사 정보를 하나 둘씩 읊어나가면 기자들은 그 내용을 받아 적고, 차가 식을 때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기자실로 돌아와 기사를 쓰게 된다는, 그런 그림 말이다. 박 전 장관의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자면 "택(턱)도 없는 소리"다.
한동훈 장관의 약속대로 2019년 조국 전 장관이 폐지한 티타임은 이번 주 재개된다. 기자인 내 말을 누군가는 믿지 않을 것이고, 티타임을 통한 검언유착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 시작하는 티타임에는 분명 티가 안 보일 것이고, 선문답투성이의 질문과 대답에 기자들은 계속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다. 그게 티타임의 진짜 모습이니까.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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