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저자 룰루 밀러
한국 인기에 "얼떨떨하고 놀랍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쉬이 손이 가지 않는 과학 분야 책이다. 저자는 룰루 밀러라는 생소한 이름의 과학 기자. 1인 출판사가 번역본을 냈다. ‘안 팔릴 이유’가 이렇게나 많다. 그런데 10만 부가 넘게 나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올해 상반기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대박. 출판계도 놀라고 작가도 놀랐다. “얼떨떨하고 믿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한국 독자를 사로잡은 매력은 뭘까. 최근 밀러와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우리 모두 절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데 굶주려 있죠. 그 갈증이 파도가 된 순간을 책이 함께하는 것 같아요.” 위로의 힘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이미 가치를 인정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매체가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을 지낸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생을 다룬 책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작가의 경험과 19세기 미국 상황이 휙휙 오간다. 에세이, 사회학서, 과학책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밀러는 “하하, 그렇게 읽었다면 내 함정에 빠진 것”이라며 “독자를 분류학, 심리학, 실존 철학 등 낯선 소재의 롤러코스터로 안내하고 싶었다”고 했다. “세상엔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느낌을 주기 바랬다"는 의도다.
조던은 극적인 삶을 살았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학자였다. 지진으로 모든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아내와 자식이 죽는 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분류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분류’를 향한 그의 집착은 유색인종, 여성, 빈민을 열등하다고 믿는 극단적 우생학으로 왜곡된다. 밀러는 “처음에는 그의 삶에서 교훈을 얻으려 했지만, 그의 복잡하고 위선적인 면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독자의 호기심을 낚아 챈 책 제목은 여기서 유래했다. 조던은 생존 당시 인류에 알려진 어류 5분의 1 이상을 식별해 목록으로 남겼다. 생명 간의 우열 관계도 주장했다. 현재 모두 틀린 생각으로 판명됐다. 산에 사는 독수리, 염소, 개구리를 ‘산류’라고 묶을 수 없듯이, 비늘이 달렸다고 다 ‘어류’는 아니다. 우열도 없다. ‘멍게’는 열등한 생물이 아니다. ‘척추’ 같은 구조물을 가장 먼저 갖춘 혁신가다.
이 같은 서사의 끝에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위대하다.’ 밀러는 ‘아직도 물고기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질문에 “나 역시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며 “그 순간에는 ‘물고기’로 분류된 유리병들의 뚜껑을 따고, 비늘이 달렸지만 미묘한 차이를 가진 생물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했다. 밀러는 넌지시 다른 고정관념의 병 뚜껑 역시 풀어 버리라고 제안한다.
밀러의 감수성은 세상을 흔들었다. ‘위대한 학자’로 알려진 조던의 실체를 알려 나갔다. 미국 내에서 공감대를 얻었고, 조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장학금 등의 명칭은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밀러는 “절망에 직면했을 때 계속 나아갈 방법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10년에 걸친 집필 시간은 결국 치유의 과정이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던 날들이 나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줬죠. 독자들도 그런 나날들에서 걸어 나오길 바래요.”
‘조던을 비판해 자신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뾰족한 질문도 해봤다. 밀러는 호기롭게 “하, 그건 정당한 비판"이라고 했다. "조던을 평면적인 악당(villain)으로 그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는 그는 "숨겨지고 보잘것 없는 사실을 밝히는 데 헌신하고, 재앙 속에서 포기하지 않은 그의 창의력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에게서 얻은 주된 교훈은 ‘확신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밀러는 방탄소년단(BTS)의 팬, 아미의 일원이라고 밝혔다. BTS의 노래 'RUN'에 열광(I run to ‘Run’) 하고 버터플라이에서 위로를 구한다고. 그가 보기에 BTS는 절망, 좌절 등 정신적 문제를 솔직히 이야기하도록 돕는 아티스트다. 밀러는 “내 책은 정신적 문제가 더 이상 주홍글씨가 아니게 된 시점에 나왔다”며 “정신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읽고 싶어 하는 갈망과 파도와 축제의 일부인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작업은 책이 아닌 라디오다. 9월부터 '지구의 것들'(terrestrials)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며 “특히 우울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미국 프로그램이라 아쉬운 마음은 다음의 상냥한 메시지로 달래길. “당신을 웃음 짓게 하는 이들과 함께하세요. 해로운 사회 질서를 부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일탈을 즐거워하는 괴짜들과 연대하세요. 자연의 품에 안기세요. 우리 심장이 가득 찼을 때 최선의 행동력과 최고의 창조력이 발휘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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