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美 펠로시의 대만 방문 소식에 25년 전 '깅그리치 회담' 재소환... 왜?
알림

美 펠로시의 대만 방문 소식에 25년 전 '깅그리치 회담' 재소환... 왜?

입력
2022.08.02 16:00
수정
2022.08.02 16:07
0 0

깅그리치 대만 방문, 펠로시와 달랐던 세 가지
①공화당 깅그리치 방문에 민주당 정부 거리두기
②깅그리치, 직접 중국 방문해 입장 설명하기도
③1997년, 양안 위기 완화하던 시점에 방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정부 내 권력 서열 3위인 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아시아 순방 도중 대만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이 지난 1997년 4월, 미국 최고위직으로 대만을 방문한 이후 25년 만이다.

당시 리덩후이 대만 총통을 만난 깅그리치 전 의장은 중국을 향해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한다면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부는 당시에도 이에 반발하며 미국이 '하나의 중국' 인정 노선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형식상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깅그리치의 대만 방문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중국과 대만 관계(양안관계),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성격이 강하다.

깅그리치 "중국의 대만 침공은 분명히 방어한다"

1997년 4월 뉴트 깅그리치(오른쪽) 당시 미국 하원 의장이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7년 4월 뉴트 깅그리치(오른쪽) 당시 미국 하원 의장이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깅그리치 전 의장의 1997년 대만 방문은 양안 긴장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시점 후에 이뤄졌다. 1996년 초 대만은 개혁 성향의 리덩후이 총통 지휘 아래, 처음으로 총통 직선제 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중국은 리 총통을 사실상 권좌에서 밀어낼 목적으로 대만 인근 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위협까지 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중국의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 위협이 현실화하자 미국은 항공모함 2척을 비롯한 해상 전력을 파견해 대응했다. 더구나 리 총통은 오히려 대중국 강경노선을 설파하면서 총통 자리에 재선됐다.

빌 클린턴 미국 민주당 정부는 사실상 굴욕을 당한 중국을 다독이기 위해 유화 외교를 구사했다. 보수 공화당내 강경파는 이에 반발했고, 하원 의장이자 하원 내 공화당의 대표였던 깅그리치의 대만 방문도 이런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자신 또한 '대중(對中) 매파'였던 깅그리치는 순방 당시엔 중국에 대해 공격적으로 발언하지 않으면서도 "중국이 공격한다면 우리는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전쟁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1950년의 딘 애치슨의 발언(애치슨 선언)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한국전쟁)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 대만이 포함되는 것을 분명하게 하자는 얘기였다.


대통령과 당이 다른 깅그리치 vs 당이 같은 펠로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이 지난 7월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우선주의 정책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깅그리치는 정계 은퇴 후에도 공화당의 원로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AP 연합뉴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이 지난 7월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우선주의 정책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깅그리치는 정계 은퇴 후에도 공화당의 원로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AP 연합뉴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게 되면 25년 전, 깅그리치 전 의장의 대만 방문 당시 내포됐던 '미국의 대만 방위 공약'과 유사한 형태의 메시지가 재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깅그리치 방문과 펠로시의 방문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깅그리치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당적이 달랐다. 미국 정부는 민주당 정부였고 깅그리치는 공화당의 지도자였다. 중국이 깅그리치의 대만 방문에 대놓고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깅그리치의 입장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하기 애매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는 의도적으로 "깅그리치는 본인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거리를 뒀다.

이에 선궈팡 중국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정부와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이 엇갈린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대만을 합병하기 위한 군사적 수단의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펠로시 의장은 조 바이든 정부와 같은 민주당 당적이다. 미 행정부가 형식상 의회 권력인 펠로시 의장의 입장과 거리를 두더라도, 중국을 비롯해 외부에선 미국의 양안 정책이 완전히 대만 위주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방부에선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말했지만, 결국 방문을 지원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중국부터 간 깅그리치 vs 사전 교감 없던 펠로시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행인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을 다룬 중국 관영지 환추스바오의 지면을 살피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행인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을 다룬 중국 관영지 환추스바오의 지면을 살피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또 다른 차이는 동선에 있다. 깅그리치는 대만을 방문하기 전에 중국부터 갔다. 깅그리치는 대만 방문 전 3일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해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 리펑 당시 총리 등과 대화했다. 애초 대만이 일정에 포함된 것 자체가 중국 방문이 확정된 후 추가된 것이었다.

깅그리치의 당시 발언을 보면, 대만 방문을 중국에 이해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중국 방문 후 미국 언론에 "우리(깅그리치와 중국)는 논쟁을 한 적이 없다"면서 "중국 쪽에서는 '우리가 (대만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니 미국도 방어할 필요가 없지 않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이는 매우 건전한 대화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당시는 앨 고어 부통령이 직전에 베이징을 방문한 상황이었다. 깅그리치는 당시 대통령, 부통령과 중국에 대한 메시지를 조율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중 외교에서 사실상 역할 분담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현재 펠로시 의장의 방문 동선에는 중국이 없다. 펠로시 의장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한국, 일본을 방문할 예정으로, 대만 방문 여부는 끝까지 공식화하지 않은 채 아시아 방문에 올랐다. 미중 간 긴장은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통화하면서 긴장을 풀어내려 했지만 대만 문제에 있어서는 갈등 신호만 냈다.

양안 위기 뒷마무리 vs 양안 위기 재발?

1일 베이징의 한 거리에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95주년을 기념하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1일 베이징의 한 거리에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95주년을 기념하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시점 상으로도 차이가 있다. 깅그리치 전 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6년 양안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현상 유지를 원하던 중국과 미국 양측이 양안 문제로 갈등을 증폭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로서는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압박할 만큼 국력이 크지도 않았다.

반면 현재의 중국은 미국과 '양강'으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군사력은 당연히 미국에 못 미치지만 대만과의 거리가 가깝고 종종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제 활동 면에서도 대만은 중국과의 교역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대중 강경 정책을 실행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상당 부분 이어받은 상태이다 보니 미중 관계도 상당히 악화됐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깅그리치 "펠로시, 대만 가라"

2일 대만 신문들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을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2일 대만 신문들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을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전후해 중국이 대만에 보복성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해협의 군사 배치를 증강했으며 남중국해 등지에서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는 등 긴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무기 정책 전문가인 테일러 프레이블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과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중국이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어서는 훈련을 실시하는 등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목표는 긴장을 고조하지 않고 결의를 보여주려는 것이겠지만, 이 지역에 상당한 미 해군 자산이 있기 때문에 우발적인 충돌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25년 전 주역인 깅그리치 전 의장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응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논평을 통해 "미국은 가치와 정책에 있어 강하고 분명해야 한다. 지금 물러서는 것은 미국이 약하고 비겁해지고 있다는 확신을 주게 될 것"이라면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자유롭고 안전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진정으로 초당적임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