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청원' 공감에 답합니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운영합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 후속조치 마련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보도(7월 29일)한 애니청원에 포털사이트와 한국일보닷컴, 동물자유연대, 어웨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감해주신 분이 3,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국회 통과와 민사집행법, 동물보호법 등 후속 입법조치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한 리트리버 '소망이'의 호소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셨는데요.
국회의원 연구단체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 대표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앞으로의 민법 개정안 시행 절차와 파급 효과를 물었습니다. 조해인 동물자유연대(동자연) 법률지원센터장은 민법 개정안 내용과 의의를,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민법 개정안의 한계와 해외 민법상 동물의 지위를 설명했습니다.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데,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국회법 절차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5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국민동의청원도 등록된 상태기 때문에 심사와 통과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청원이 성립되면 법사위는 90일 안에 민법 개정안 심사결과를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동물복지국회포럼도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이 꼭 통과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이하 박홍근 의원)
-최근 동물단체와 개최한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다음 단계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민법 개정안이 선언적 수준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물이 물건이 아닌 법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생기는 입법 공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가능하고 금지되는지, 민법상 손해의 범위, 손해배상청구 규정 등 실효적인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후속 입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른 법령 또는 인간 권리와의 충돌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 반려동물에만 한정되어 있는 동물의 법적 지위 논의를 전체 동물을 포함할 수 있도록 넓히는 것도 다음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민법이 개정되면 기대되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법 개정안에 여전히 '특별한 법률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물건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물의 지위를 '법'으로 인정했다는 점 그 자체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후속 논의와 입법을 통해 동물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동물권'을 향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깐 것입니다."
-민법 개정안을 보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특별한 법률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물건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다'고 되어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민법은 시민의 재산관계,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사람 외에는 다 대상으로 봅니다. 동물도 그동안 물건으로 다뤘는데, 이번 개정안은 동물을 다룰 때는 물건과 다르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민법만 개정하면 다른 법과 충돌이 생기기 때문에 다른 법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물건에 준용해서 취급한다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민법 개정안 자체로만은 실효성이 없고, 후속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해인 동자연 법률지원센터장)
-후속 입법이 없다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그동안 동물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동물값’만 물어주면 됐고, 정신적 보상 등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물건이 아닌 존재가 되면 유대감 등을 고려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전보다 쉽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민법 개정안 내용이 해외보다 뒤처졌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너무 진취적으로 개정하면 충돌되는 법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도 우리와 비슷하게 '특별한 법률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물건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민법 개정안이 우선 입법 취지에 맞게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압류금지, 손해배상 등을 위한 다른 법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민법은 기본법으로 다른 법을 바꿀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예컨대 법원의 강제집행 대상에서 반려동물을 제외하려고 했지만 현행 민법과 충돌이 생겨 하지 못했습니다. 동물 권리 보장은 민법 개정이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해외에선 이미 동물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법적 정의
-최근 동물의 법적 지위 관련 민법을 개정한 국가에서는 동물을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정의한다는데,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2009년 유럽연합(EU)의 리스본 조약을 계기로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민법을 개정해 동물을 '물건이 아니다'라는 부정형이 아닌 '감응력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감응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은 주변 환경을 느끼고 지각할 수 있으며 즐거움과 괴로움 같은 긍정적, 부정적 상태를 모두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외에 다른 존재나 제3자의 행동을 감지하고, 자신의 행동과 결과의 일부를 기억하며 일정 정도의 지각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는 정의도 있습니다.” (이하 이형주 어웨어 대표)
-해외에서 감응력이 있는 존재라고 규정한 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소유자 즉 보호자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소유자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물건은 아무렇게나 사고팔면 되지만 동물은 감응력이 있는 존재기 때문에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더라도 동물복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동물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종별로 신체적, 정신적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소유자의 권리 보장만을 추구하는 소극적 방식 대신 물건과 동물을 구분하는 데서 나아가 동물을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게 후속 입법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 민법을 개정한 국가 중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스페인은 여전히 투우도 하고, 유기동물도 매년 15만 마리 가까이 발생하는 등 우리나라와 동물 인식 수준이 비슷한데요, 지난해 12월 '동물은 감응력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다'라는 내용으로 민법 개정을 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후속조치로 펫 숍 금지, 동물학대 처벌 강화, 동물원 동물 도입과 번식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민법 개정에 이어 후속 입법 조치가 뒷받침된 사례라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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