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이동 뒤 '스팸 피해' 잇따라
주식 권유·대출 광고 등 종류도 다양
이전 번호 소유자 지인 연락도 빈번
통신사 '스팸 차단 의무 강화法' 갑론을박
작전주 알려드립니다. 오후 9시까진 꼭 보셔야 합니다.
몇 달 전 휴대폰 번호를 바꾼 직장인 김모씨(33)는 하루에도 몇 통씩 날아오는 스팸(SPAM·무작위로 발송된 불필요한 정보) 문자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전에 해당 번호를 사용한 사람이 주식을 많이 했는지 '급등주', '작전주' 등 투자 관련 광고 문자가 날아들고 있어서죠. 영업직인 김씨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빠트리지 않고 확인해야 하는데, 스팸 문자 때문에 업무에 차질까지 생긴다고 하네요. 김씨는 "번호를 바꾼 이유도 대출 권유 전화가 많이 와서 정작 중요한 전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바꾼 번호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토로합니다.
이처럼 휴대폰 번호 이동 뒤 소비자들이 겪는 스팸 광고 피해가 커지면서 "통신사들이 번호 이동 소비자가 받는 스팸을 차단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단순한 문자와 전화 공급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스팸 문자 차단과 번호 이동 소비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구입니다. 최근 스팸 관련 소비자 피해가 늘면서 이런 주장엔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데요. 스팸 차단 응용소프트웨어(앱) '후후'를 운영하는 브이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후후 서비스 이용자들이 신고한 스팸은 886만 건에 달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2분기 대비 127만 건, 올해 1분기 대비 76만 건 증가한 수치입니다. 반면 통신사들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들며 소비자 개개인의 스팸 차단이 더 효율적이라고 하소연합니다.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번호 바꾼 뒤 날아드는 스팸 문자"
휴대폰 번호를 옮긴 뒤 앞서 해당 번호를 썼던 사람의 지인들이 연락해오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날아든 문자와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전화 등에 당혹스럽지만 처음 몇 번은 친절하게 "번호가 바뀌었습니다"라고 응대할 수 있지요. 그런데 친절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런 연락이 오면 아무리 심성 고운 사람도 짜증이 불쑥 납니다.
20대 직장인 박모(29)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겨울 휴대폰 번호를 바꾼 박씨는 이전 번호 사용자의 지인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하나하나 응대해야 했어요. 처음 동창 모임에 참석하라는 공지 문자를 받았을 때는 "번호가 바뀌었습니다"라고 친절히 답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카카오톡 연락까지 오자 무서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씨는 "어느 날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방이 '응, 나야'라고 말하는데 덜컥 겁도 났다"면서 "평소 잘 설정하지 않았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걸어놓고 몇 주 동안 몇몇 번호를 차단하거나 번호 이동 사실을 전달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이전 번호 사용자 지인들에게 온 연락이야 서로 "어이쿠, 미안합니다"라며 정리되지만 대출 권유와 대리운전 광고, 주식투자 정보 등 스팸 광고는 정말 난감합니다. 아무리 번호를 차단해도 어디서 어떻게 번호가 떠돌고 있는지 끊임없이 연락이 오곤 하죠. 인터넷 커뮤니티엔 "번호를 이동한 뒤로 하루에 스팸 전화가 서너 통, 스팸 문자가 3~5통씩 오는데 정말 미치겠다. 해결 방법이 없나"라는 고민글도 여럿 올라와 있습니다.
나는 번호를 바꿨을 뿐인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 그리고 각종 광고로 고통을 받는 상황인데요.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요.
"통신3사가 번호 이동 이후 스팸 문자 막아라"
물론 지금도 통신3사가 그 나름의 해결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①스팸 문자 등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데이터베이스(DB)를 쌓아 통신사와 공유하는 방식이 있고 ②통신사가 제공하는 '스팸 필터링 서비스'도 있습니다. ③통신사는 해지된 전화번호를 28일 동안(스팸범죄 번호는 6개월) 묶어두며 다음 이용자의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대책들은 시시각각 전화번호를 바꿔가며 소비자에게 연락해오는 스팸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스팸에 대한 사전 차단보다는 사후 대응에 초점을 두고 있죠. 또 광고 스팸이 아닌, 이전 번호 사용자 지인의 연락까지 차단하진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선 새로운 법이 하나 등장했는데요.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이 법은 번호 이동 후 겪는 스팸 문자와 이전 번호 사용자에게 보내지는 사적 연락을 줄이기 위한 통신사의 '사전 책임'을 강화했습니다. 법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해지된 전화번호의 재공급 기간을 현행 28일보다 늘리고 ②전화번호 재공급의 경우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입니다.
김영식 의원은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의 사례로 ①통신사가 해지 번호의 DB를 작성해 금융, 인터넷 단체와 공유함으로써 이전 번호 사용자로 잘못 안 통화, 문자 송신을 막고 ②해지된 번호를 재사용하는 소비자가 원할 경우 번호 변경 사실을 안내하는 기능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스팸 번호 각각에 대한 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통신3사가 이용자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뜻이지요.
통신사 난색…"번호 부족하고 개인정보 침해 우려"
통신사들은 해당 법안에 난색을 표합니다. 법안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빗겨났고, 여러 현실적 한계를 고려했을 때 '번호 이용자 개개인의 스팸 차단'이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인 거죠. 통신사들은 ①전화번호 재사용 금지 기간을 늘리면 전화번호 부족 문제가 심해지고 ②'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전화번호'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안되며 ③번호 해지에 대한 DB 공유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고 반박합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①우리가 흔히 쓰는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 중 약 82%는 이미 사용 중이고요. ②미사용 번호 중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전화번호'는 통신3사를 합쳐도 1% 미만입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가 보유한 이동통신 번호는 총 7,392만 개인데요. 이 가운데 현재 사용 중인 번호는 6,040만 개이고 미사용 중인 번호는 1,352만 개라고 하네요.
특히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전화번호', 즉 이전 번호 사용자의 지인과 스팸 광고에서 완전히 깨끗한 번호는 통신3사를 모두 합쳐 약 23만 개라고 하네요. 통신사가 보유한 전체 번호의 0.31% 수준입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사들은 해지 시점이 오래된 순으로 번호를 배정하고 있다"면서 "고객 번호 DB를 금융기관 등에 공유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우려합니다. 또 "스팸이 날아오는 곳 중 불법 대부업체나 주식 투기꾼들도 있는데 여기까지 고객 DB를 공유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되묻네요.
다만 이런 주장에 대해 김 의원 측은 "새 가입자가 대부분 어린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용 이력이 있는 번호를 새 이용자에게 주는 경우에는 좀 더 세밀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기술적 조치로도 많은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국민의 대부분이 휴대폰을 쓰는 현실을 고려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보다 강화된 통신사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합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작전주' 추천 링크를 눌렀다가 피해를 입는 상황은 아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제 고민은 소비자의 몫입니다. '번호를 바꾼 죄'로 온갖 스팸과 얼굴도 모르는 이의 연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소비자 개인이 매번 걸려오는 스팸을 확인하고 차단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엔 너무 불편합니다. 반면 통신사들이 소비자 DB를 만들어 공유하자는 아이디어도 다소 불안합니다. 통신사들이 해지된 번호를 오래 묵혀둘 수 없는 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고요. 밤낮 없이 괴롭히는 스팸 차단,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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