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에 기상 관측 이후 최다인 381.5㎜의 비가 퍼부은 것은 장마철처럼 성질이 다른 두 개의 기단이 마주쳐 형성된 '정체전선' 때문이다. 이번엔 특히 기단들의 세력 싸움이 격렬한 탓에 정체전선이 좁고 길게 만들어졌고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이어졌다.
차고 건조한 공기 vs 뜨겁고 습한 공기... 한반도 위에서 전쟁 중
9일 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수일째 계속 내리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전 지구적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북위 60도선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뜨겁고 습한 공기가 북쪽을 향해 뻗어 올라가고 있다. 이를 멀리서 보면 구불구불한 파동처럼 생겼다. 이와 맞대고 있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는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내려오는데, 한반도가 위치한 지역에는 유독 찬 공기의 남하 정도가 강하다. 이 차갑고 건조한 공기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티베트고기압과 절리저기압이다.
한랭건조한 공기가 한반도 북서쪽에서 내려오면서 남서쪽에서 세를 불리던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충돌하게 됐다. 즉 두 개의 성질이 다른 기단이 마주쳐 오랜 기간 비를 뿌리는 '정체전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체전선 중 하나가 장마인데, 이번 정체전선은 해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아 장맛비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장마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장마 때보다 많은 비가 쏟아진 건 두 기단의 충돌 정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동서)로 길고, 위아래(남북)는 짧은 모양의 비구름대가 형성됐다. 두 기단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다 보니 격전지(경계선)인 정체전선에서 비를 줄기차게 뿌리는 것이다.
여기에 절리저기압의 오른편(북동쪽)에 있는 오호츠크해 부근 저지고압능이 벽처럼 가로막고 서서 절리저기압을 동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대신 남쪽으로 끌어내린다. 고압능이 절리저기압의 퇴각로를 막아 정체전선이 유지·강화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 고압능은 제5, 6호 태풍이 열대저압부로 약화한 뒤 우리나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기상청은 이번 비를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기후변화나 기후위기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수증기 양이 과거에 비해 많아지고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단기적 기상 변화, 대기상태 변화를 갖고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