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차관 내정 직후 '별장 성접대' 의혹 제기
"경찰, 진술 의존 부실수사" "검찰, 소극 지휘·수사"
과거사진상조사위, 보고서에 검경 수사 미진 지적
3차 수사서 김학의 뇌물로 구속... 재판선 무죄·면소
'별장 성접대' 동영상 속 인물로 지목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1일 대법원에서 뇌물 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3년 3월 의혹이 불거진 뒤 9년 5개월 만에 모든 혐의에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받았다. 검찰 고위직과 스폰서 유착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김학의 사건은 세 차례 수사에도 성접대와 뇌물, 성폭력 등 모든 혐의에 대해 단죄하지 못한 미완으로 남게 됐다.
2013~2014년 수사 "경찰은 성급, 검찰은 소극"
별장 동영상 논란은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첫 차관급 인사에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내정된 직후 불거졌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내사 착수 사실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성접대 의혹 수사로 전환하자, 김 전 차관은 취임 엿새 만에 사퇴했다. 경찰은 김 전 차관 내정 전부터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와 맞고소전을 벌이던 내연녀 측에게서 동영상 등을 넘겨받았다.
경찰은 수사 초기 '부패범죄'에 초점을 뒀다. 그해 4월 초만 해도 수사보고에는 '뇌물수수 피의사건' '뇌물공여' 등의 표현이 담겼다. 다만, 성접대 대가성은 찾아내지 못했다. 공소시효를 5년으로 짧게 본 데다 윤씨의 입도 열지 못했다. 경찰은 별장에 드나든 여성들이 강간이나 강요 등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한 것을 토대로 그해 7월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2013년 11월 김 전 차관을 혐의없음 처분했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던 특수부나 성범죄 전담부가 아닌 강력부 검사 3명이 수사한 뒤 피해 여성들의 진술 번복과 강간으로 볼 수 없는 정황 발견으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2019년 5월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은 경찰과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찰에 대해선 "석연치 않은 경위로 수뢰 혐의 수사를 중단하고, 여성 진술에만 의존해 면밀한 검증 없이 수사했다"고 평가했다. 검찰에는 "김학의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 실체에 접근할 수사방법을 제시하는 지휘를 하지 않았고, 경찰 송치 혐의에만 국한해 미온적으로 수사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부실 수사와 검찰의 소극적 수사로 김 전 차관과 윤씨를 법정에 세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동영상 속 인물을 '김학의'라고 밝힌 경찰과 달리 "동영상이 범죄 사실과 관계없다"는 이유로 신원을 밝히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2014년 검찰의 2차 수사팀도 김 전 차관을 혐의없음 처분하며 불기소이유 통지서에 '불상의 남성'이라고 썼다.
5년 지나 3차 수사... 재판선 '면소와 무죄'만
두 차례 검찰 수사에도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되자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2018년 문재인 정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차 수사를 권고하면서 재조명됐다. 문 대통령이 2019년 3월 "검경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하자, 검찰은 김학의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착수했다.
김 전 차관은 결국 검찰의 세 번째 수사 끝에 구속됐다. 윤씨에게 13차례 성접대 등 1억3,000여만 원 뇌물과 사업가 최모씨에게서 4,000여만 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동영상 속 성접대를 뇌물로 간주해 기소하면서 영상 속 남성을 "김학의가 맞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김 전 차관을 법정에 세웠지만, 법정에선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免訴·실체적 소송 조건이 결여된 이유로 소송을 종결) 판결을 받거나 무죄가 났다. '골든타임'을 놓친 뒷북 수사의 예고된 결과였다.
김학의 없는 김학의 관련 파생 사건만 수두룩
김 전 차관은 모든 혐의를 벗었지만, 파생된 사건으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와 청와대 인사 등은 현재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검사는 윤중천 면담보고서를 허위 작성하고 언론에 흘린 혐의도 받는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불법 출금 의혹 수사팀에 수사 중단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김학의 사건으로 '버닝썬' 사태를 덮으려 했다는 '청와대발(發) 기획사정 의혹'도 수사 중이다.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한 법조인은 "2013년 검찰과 경찰이 한 점 의혹 없이 실체를 가려낸다는 각오로 수사했다면 김 전 차관도 제때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졌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이 10년 가까이 반복적으로 수사를 받는 일은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