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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문회만 넘기고 보자는 생각으로 무책임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귀에 익은 대사다. 때만 되면 반복된다. 이리저리 피해 가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 공직 후보자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데 그렇다고 딱히 묘수도 없어 목소리를 키우는 야당 의원. 인사청문회에 빠지지 않는 단골 장면이다. 마치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했던 청문회가 끝나고 난 뒤, 그 무대 뒤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그 많던 청문회 의혹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모든 게 딱히 말끔히 해소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국무위원 등 주요 고위공직자 내정자가 발표되면 곳곳에선 검증의 칼날이 번뜩인다. 야당 의원실도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특히 여러 매체들도 인사 검증팀을 꾸려 내정자가 과연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확인하려 애쓴다.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부동산 투기, 이중국적, 탈세, 자녀 부당 특혜 등 결격 사유가 될 만한 의혹들이 이 과정에서 쏟아진다. 똑 부러지게 진위 여부가 가려지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태반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낙마 혹은 임명이 결정되고 나면, 남은 의혹들의 검증 열기나 문제 이슈에 대한 관심은 차갑게 식는 게 익숙한 풍경이다. 마치 모두 ‘그걸 더 알아서 뭐해’ 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요즘 친구들 다 이래요.”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한국일보 검증팀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학부모, 입시학원 강사는 물론 한 장관 측 관계자 또한 입 모아 말했다. 청문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귓가를 맴도는 이 말을 탐사팀은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요즘 친구들은 누구이며 국제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스펙 공동체를 꾸리는 일이 정말 흔하디 흔한 일인지.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돈과 지위가 총동원되는 일이 이토록 당연시된다면, 다른 아이들의 노력은 무엇이 되는지. 진짜 현장 검증이 다시 시작됐다.
현장 실태를 고스란히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탐사팀은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제주도와 인천 송도, 미국 대입 컨설팅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을 한 달 동안 집중 취재했다. 그것만으로는 ‘아이비 캐슬’의 실체 파악이 어려워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와 ‘미국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어바인으로 향했다.
아는 학원, 학부모 하나 없는 미국으로 향한 탐사팀의 두 기자는 이산가족처럼 종일 각자 미국의 학원가를 훑고 다녔다고 한다. 예약 문화 탓에 낯선 방문객을 특히 꺼리는 현지에서 종일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밤 12시면 호텔 방에 모여 취재 메모를 함께 대조하며 “내일은 또 어디를 가 취재하지”를 고심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좁은 교민 사회의 눈을 걱정한 취재원들의 우려 탓에 교민 취재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들의 호텔 방에서 비밀 작전을 치르듯 겨우 만남에 응해준 취재원이 있었고, 귀국하기 직전 날에서야 “저희 이제는 곧 떠나게 된다”는 말에 인터뷰에 응한 학부모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확인한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의 실체는 가히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학생 이름과 몸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수업 설계, 진로 선택, 학교 과제 첨삭, 봉사 활동 코치, 원서 작성, 기숙사 신청까지. 컨설팅 회사 관리 항목만 50여 개에 달했다. 단독 입수해 보도한 컨설팅 견적서에 따르면 비용은 최소 1억4,000만 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허위 스펙을 사는 일이 ‘한국식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바인에도 상륙했다는 것이었다. 도피 유학 편입생 관리에 특화된 컨설팅까지 이어지면서, 이를 바라보는 교포 사회가 큰 박탈감을 느끼게 됐고 미주 한인 사회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포착했다.
이런 취재와 보도의 역경이나 놀라운 ‘아이비 캐슬’의 실태만큼이나 기자들을 힘들게 했던 건 하나의 의구심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보도한다고, 이 문제가 쉽게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뢰 기반의 미국 사회나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을 향해 검증의 잣대를 더 엄격하게 하라고 무턱대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오히려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괜히 매력적인 선택지만 알려주는 게 아니냐는 고민이 뒤따른 것이다. 하지만 단번에 바꿀 수 없다고 해서 공론화까지도 회피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한 취재기자는 말했다. “누군가는 돈 있는 사람들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편법과 위법으로 얼룩진 이런 욕망들이 정당하다고도 할 수 없을뿐더러, 이렇게 받은 해외 대학의 학위가 누군가를 지배하는 데 이용되는 목적이라면 더욱 부당합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얻은 지위를 우리 공동체가 추켜세워주는, 그런 우스운 상황만은 만들어선 안 되지 않을까요.”
혹자는 언론을 이미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만 달려들어 ‘화르르’ 전의를 불태운 뒤 사라지는 불나방에 비유하곤 한다. 청문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인천, 제주, 압구정, 미국을 훑으며 사실 확인을 거듭한 일개미 기자들이 듣는다면 참 억울할 말이다. 다행히 보도 이후 기자들은 억울한 평가보단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그들의 열정은 물론 고민의 결까지 이해해준 독자들로부터 말이다. “이렇게 자세히 써 줘서 고맙습니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계속 보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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