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9일 폭우에도 서울 자치구들 주정차 단속
5270대 단속... "재난대응 힘 쏟기도 벅찬데"
“주차장이 침수돼 길가에 세워둔 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끊는 게 말이 되나요?”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 사는 50대 이모씨는 8일 폭우로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기자 차를 아파트 앞에 세워뒀다. 다른 주민들도 침수를 우려해 이씨처럼 차량을 밖으로 꺼냈다. 그러나 이씨는 이튿날 자가용 앞 유리에 과태료 부과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정차 규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 구청에 문의해보니 4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여럿도 같은 스티커를 발부받았다. 이씨는 “정부가 배수관 정비 등 폭우 대책을 소홀히 해 침수 피해를 당했는데, 사정도 모르고 딱지를 떼니 어이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와 25개 자치구는 역대급 폭우가 쏟아진 8, 9일 평소처럼 시내에서 주차 단속을 진행했다. 재난상황을 반영한 별도 지침은 없었다. 이 기간 총 5,270대 차량에 주정차 위반으로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했다.
영등포구의 경우 294대가 단속에 걸렸고, 침수 피해가 잇따라 거리에 방치된 차량이 많았던 강남구에선 323대가 고지서를 받았다. 실종자가 5명이나 나온 서초구도 178대가 단속됐다.
각 자치구는 “사고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물난리에도 어쩔 수 없이 주정차 단속을 했다고 해명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비가 많이 내릴 때 차량이 불법 주차돼 있으면 사고가 종종 일어나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과태료 부과는 최소한으로 했고, 추후 위반 사유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감면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난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에서 편의주의에 기댄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이 더 많다. 이병훈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천재지변에서는 당국이 피해 구제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도, 주민 사정은 외면한 채 엉뚱한 데 힘을 쏟았다”고 비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주정차 단속에 나선 요원들의 안전 우려도 제기된다. 통상 시내 주차 단속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 또는 11시까지 진행되는데, 폭우 기간에도 출근 시간 조정은 없었다. 주차 단속요원들은 시간 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된다. 반면 정부는 9일 수도권 공공기관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로 늦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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