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이라는 말이 있지만 일반 고혈압과 전혀 다른 질환이 있다. 폐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 이상으로 폐동맥 혈압이 높아지는 ‘폐동맥 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 압력이 평소 25㎜Hg 이상, 운동 시 30㎜Hg 이상일 때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 벽이 두꺼워지면서 폐동맥 내에서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발생한다.
이로 인해 폐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이유 없이 숨이 찬(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숨찬 증상은 초기만 해도 운동이나 계단 오를 때 등 움직임이 커지면 심해진다.
병이 악화하면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빠진다. 전신 무력감과 어지럼증, 만성 피로감, 가슴 통증, 실신도 발생할 수 있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손발 끝이 차갑고 하얗게 변하는 ‘레이노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전신 홍반성 낭창(루푸스) 환자가 호흡곤란 등과 함께 레이노 현상이 생기면 폐동맥 고혈압을 의심할 수 있다. 장성아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루푸스 환자에게서 생기는 폐동맥 고혈압도 3분의 1 정도”라고 했다.
자가면역질환이 있으면 몸속 어디에나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염증이 폐동맥에 생기면 혈관이 좁아져 폐동맥 고혈압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40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장 교수는 “젊은 여성 상당수가 활동량이 많지 않고, 30, 40대에는 임신ㆍ출산ㆍ육아 등을 겪으면서 건강에 신경 쓰지 못해 가벼운 호흡곤란이 생겨도 운동 부족으로 여겨 병원을 늦게 찾는다”고 했다.
폐동맥 고혈압을 방치하면 심부전(心不全ㆍheart failure)으로 돌연사할 위험이 높아진다. 그러나 폐동맥 고혈압 건강보험 급여 기준 적용이 엄격해 조기 진단ㆍ치료가 늦어져 3년 생존율이 54.3%에 그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폐동맥 고혈압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가 매년 4,500~6,000명으로 추정된다.
장혁재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이 악화하면 심장 우심실 기능이 망가지는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한폐고혈압연구회에 따르면 폐동맥 고혈압을 조기 진단ㆍ치료하면 생존율이 3배가량 높아진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진단 후 10년 이상 생존할 수 있고 기대 생존율도 7.6년까지 늘어난다. 미국과 일본 등은 조기 진단ㆍ치료가 잘 이뤄지면서 3년 생존율이 각각 73%, 82.9%에 이르고 있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일반적으로 폐동맥 특이 혈관확장제를 사용해 폐동맥 혈압을 낮추는 치료를 시행한다. 폐동맥 고혈압 정도에 따라 단일 치료제를 쓰거나 2개의 먹는 약으로 병용 치료한다.
약으로는 경구제ㆍ흡입제ㆍ주사제 등 3가지가 있다. 이 중 경구제는 엔도텔린 수용체 길항제(ERA), 포스포디에스터라제-5 억제제(PDE5i), 프로스타사이클린 제제(PC) 등 3가지 계열이 있다. 현재 국내 사용 가능한 흡입제는 프로스타사이클린 제제인 일로프로스트, 주사제로는 트레프로스티닐이 있다.
박재형 충남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5년 생존율이 웬만한 암 환자보다 낮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질환 초기부터 효과적인 병용 요법 치료를 권장하는 글로벌 지침과 달리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고위험군으로 한정돼 있어 적절한 치료가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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