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일상 곳곳, 마약의 엄습
'대마 합법' 태국서 관련 제품 봇물
'공짜 여행' 미끼, 마약 대리운반 증가
11일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객으로 붐볐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동남아시아 휴양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게 앞에 대마를 뜻하는 초록색 잎을 그려 넣은 광고판이 서 있었다. ‘그린 메디신(GREEN MEDICINE·녹색 약)’이란 큰글씨를 뒤로 하고 가게에 들어서자, 제품 판매대에 있던 한 여성이 물었다. “태국에 왔으니 아주 특별한 음료인 ‘니르바나’ 드릴까요? 한국에는 없으니까, 여기서 마셔 보세요.”
이 가게는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대마를 합법화한 태국의 현지 모습을 옮겨 놓은 곳이다. 대마가 들어간 아이스크림·맥주·음료수 등 현재 태국에서 판매 중인 '대마 식품'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건 한 음료수였다. 소주병처럼 생긴 초록색 병에 담긴 데다, 병을 두른 표지에 니르바나란 한글까지 적혀 있어 꼭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만 파는 소주처럼 보였다. 니르바나는 열반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현삼공 관세청 국제조사과 사무관은 “마약소주라 불리는 이 제품은 대마 성분이 함유된 알코올도수 0%의 음료”라며 “태국을 여행할 땐 대마를 뜻하는 깐차(kan-cha)나 깐총(kan-chong)이란 말이 적혀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치도록 행복한 피자(CRAZY HAPPY PIZZA)’처럼 제품명이나 광고 문구에 '행복(HAPPY)'이란 단어가 쓰인 식품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대마 성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가지 더. 네덜란드에선 커피를 마시려면 커피숍 대신,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커피숍은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구입하고 피울 수 있는 곳이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소주 등 여행 곳곳에 스며든 마약
공항 출국장을 배경으로 한 그 옆 공간(부스)에선 한 남자가 갈색 여행용 캐리어를 끌면서 서성였다. 이날 해외여행을 떠나는 고교생 변현석군이 체험 부스에 들어서자 그가 와서 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혹시 비행기 타러 가시나요? 그러면 옷과 중요한 서류가 담긴 이 가방 좀 아내에게 전달해 주세요. 사례는 얼마든지 할게요.”
변군이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계속 따라오며 마약을 몰래 숨긴 캐리어의 ‘대리 운반’을 부탁했다. 변군은 “오늘 부모님과 태국 여행을 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이상은 관세청이 이날 인천공항에 마련한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과 기자의 체험 장면을 담은 내용이다. 가상으로 미리 겪어 두면 잠깐의 판단 착오로 발생할 수도 있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여행길이 다시 열리면서 일반 국민도 의도치 않게 마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①한 번쯤은 괜찮을 거란 생각에 현지에서 마약 식품을 섭취하거나, 관련 제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처벌받을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마약은 의외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한 번은 괜찮겠지'하다 마약 사범 될 수도
18일 관세청에 따르면 연초부터 6월까지 국경 반입 단계에서 적발한 마약은 372건, 238㎏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662건·214㎏)보다 건수는 줄었지만 적발량은 오히려 11.2% 증가했다. ②'공짜 여행'을 미끼로 한 마약류 대리 운반 움직임이 확대되고, 대마류 제품 밀수가 늘어난 게 특징이다.
실제 항공 여행객에게서 적발한 마약량은 5월만 해도 3건, 0.02㎏에 불과했으나, 6월에는 10건, 4.9㎏으로 폭증했다. 서아프리카·남아메리카의 마약밀수조직이 중·장년층의 한국인을 포섭해 대리 운반하는 형태가 많았다. 대마 밀수는 환각을 일으키는 향정신성 화합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등이 함유된 제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대마 오일의 올해 상반기 적발량은 1년 전보다 71% 늘었다.
관세청은 공짜 여행을 미끼로 한 대리 반입과 ③해외 직구 외에도 해외 여행 시 마약류 섭취·구매, ④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익명성을 악용한 마약 거래를 주요 노출 경로로 보고 있다. 해외여행 성수기인 이달 말까지 주요 세관이 마약류 밀반입 근절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여행지가 대마 합법화 국가라 하더라도 태국의 음료수 니르바나 같은 대마 식품을 현지에서 먹었거나, 관련 제품을 구매해 들여오면 적발 시 처벌받을 수 있다. 대마 흡연과 섭취는 마약류관리법 제61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마약 근절을 위해 태국 등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 여객을 대상으로 불시에 마약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해외여행 중 호기심에 한 번 경험한 것만으로도 마약 사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