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350만 명 영양실조·국민 절반 식량난
원조 중단·해외 자산 동결로 경제 위기 악화
"중앙은행 기능 회복돼야 경제 재건도 가능"
“아프가니스탄은 지구에 있는 지옥이다.”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이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국민 절반은 굶주림에 내몰렸다. 탈레반의 폭정과 무능이 주요 원인이지만, 아프간을 고립시킨 서방의 경제 제재와 해외 원조 중단 탓도 크다. 국제사회가 인도적 관점에서 아프간 재건과 제재 완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신생아 10명 중 1명 숨져… 아프간 90% 식량 불안정 상태
15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한 지 꼭 1년이 됐다. 그사이 아프간 경제는 파탄 났고,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 90%가 1년간 식량 불안정 상태를 경험했고,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아프간 인구 절반인 2,000만 명에 이른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은 “아프간 전쟁 20년간 사용된 폭탄과 총알보다 지금 겪는 굶주림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연약한 어린아이에게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아프간 보건부 통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아프간에서 태어난 신생아 1만3,000명이 숨졌다. 10명 중 1명꼴이다. 영양실조, 기아 관련 질병, 의료체계 붕괴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아프간 어린이 390만 명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남서부 헬만드주(州) 병원 한 곳에만 영양실조로 입원한 어린이가 800명이 넘을 정도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3월 보고서에 구호기구 관계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실었다. “지방에 사는 어린이들은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는 상태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까 두렵다.”
해외 원조 중단·해외 자산 동결…아프간 경제 붕괴
아프간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탈레반 집권 후 완전히 끊겨버린 해외 원조다. 탈레반 1기 정부가 쫓겨난 이후 20년간 서방과 국제사회는 아프간에 정치, 경제,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각국 정부가 내놓은 개발기금으로 도로와 학교, 병원이 지어졌다. 해외 원조는 공공 부문 재정 3분의 2를 담당했다. 공공 부문 고용 인원은 40만 명, 보안 분야 인력도 2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탈레반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 원조는 하루아침에 중단됐다. 사미라 사예드 라만 국제구호위원회(IRC) 활동가는 “아프간이 최근 겪는 고난은 해외 원조 중단에서 비롯됐다”며 “공공 부문 직업 대다수가 사라졌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역대 최악으로 치솟았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탈레반 미워도 아프간 중앙은행 제재 풀어야
미국이 탈레반을 고립시키려고 아프간과 연결된 모든 돈줄을 막아놓은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중앙은행에 예치한 자산 70억 달러(약 9조2,000억 원)가 동결됐고, 아프간으로 달러화 송금도 금지됐다. 음식과 의약품 전달 등 인도적 지원은 허용하고 있지만, 국제기구와 민간단체의 구호 활동만으로는 아프간에서 꺼져가는 숱한 생명을 구할 수 없다.
휴먼라이츠워치는 8월 보고서에서 “아프간 중앙은행이 거래와 결제, 통화 정책 같은 본래 기능마저 마비된 탓에 아프간 경제는 심각하게 위축됐다”며 “수백만 아프간 국민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국제구호단체들도 해외에서 지원금을 송금받기 어려워 ‘하왈라’라고 불리는 비공식 송금망을 이용하고 있다. 하왈라는 이슬람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신용거래 시스템으로 은행 대신 전 세계에 퍼진 자체 조직망을 통해 외환 거래를 한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위기를 해결하려면 아프간 중앙은행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려면 국제사회의 아프간 경제 봉쇄를 끝내야 한다. 탈레반이 여성 인권과 노동권, 언론 자유 등을 보장하도록 유인할 필요도 있다.
그레임 스미스 국제위기그룹 연구원은 “아프간을 벼랑 끝에서 구하려면 국제적 고립을 종식하고, 개발 원조를 유치하고, 경제 회복을 돕도록 서방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힘 슈타이너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도 “도덕적 분노 때문에 4,000만 아프간인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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