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7년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빛나지 않던 검찰의 '공판' 업무
묵묵히 업무해온 보통 검사들
당당한 검찰 지키는 어벤저스
구내식당 저녁 메뉴는 오징어덮밥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식판 가득 담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오징어 몇 점을 입안에 털어 넣고 서둘러 일어선다. 퇴근 시간 직후 화상으로 열리는 '공판 어벤저스 주최 공판 초심자를 위한 토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공판 어벤저스라는 그룹이 공판 업무를 처음으로 하게 되는 초임 검사들에게 공판 검사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기획으로 마련한 자리인데, 나는 바로 공판 어벤저스였던 것이다.
공판 어벤저스라는 그룹이 있다. 그들 스스로 정의한 바에 따르면 '공판 업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검사들의 연구, 실천 조직'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제도 아니고 누가 임명장을 준 것도 아니어서 그 존재 여부와 형태가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가슴 한편 공판 어벤저스의 정체성을 품고 있는 검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흔히 대부분의 히어로들이 그러하듯 평소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티나지 않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어벤저스 소환 명령이 떨어지면 먹던 식판을 과감히 내던지고 모이는 자들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공판은 전통적으로 검찰에서 그다지 선호되는 업무가 아니었다. 공판이란 이미 완성된 증거를 다만 제출하는 의미 정도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바탕으로 공판은 검사가 역량을 발휘할 일도 빛날 일도 없는 그저 스쳐가는 보직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공판에 슈퍼 히어로인 어벤저스라니. 그 어색한 단어의 조합이 야기하는 약간의 헛웃음과 마이너 정신을 자양분 삼아 공판 어벤저스는 자생해 왔다.
증거를 모두 부동의해서 막막했던 날, 꼭 필요한 증인이 나오지 않아 애가 타던 순간들과 전혀 예상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했던 공판의 경험담으로 초임 검사와 함께하는 공판 토크는 채워졌다. 선배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담을 늘어놓으면서도 어쩐지 신이 났고 마침내 임관식에서 받은 법복을 입고 세상의 법정으로 출격할 준비를 하는 초임 검사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수사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사실들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일, 사실을 구성하고 있는 증거들을 빠짐없이 무사히 내놓는 일, 하여 증거들이 구축하는 사실이 실체적 진실임을 인정받는 일과, 그 결과로서 검찰이 바라보는 형사 사법의 관점이 이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의 관점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공판 검사가 법정에서 하는 일이다. 그 일을 좋아하고 잘해내고 싶어 못내 가슴이 뛰는 검사들을 추동하는 힘은 조직의 인정이나 그럴듯한 보직의 약속이 아니라, 낱낱의 외로운 법정에서 치열하고 뜨겁게 마주했던 구체적인 사건의 기억들이다. 누가 인정해 줘서가 아니라 언론이 크게 조명해서가 아니라 이름 없이 마주하는 사건과 사람 앞에 다만 부끄럼 없이 당당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반짝일 수 있다.
최근에 책을 낸 검사 선배의 인터뷰가 '검사들은 형사사건을 십원짜리 사건이라 부른다'는 제목으로 나온 것을 보았다. '십원짜리 사건'이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인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선배의 말의 연원을 따라가 보니 선배는 과거 어느 검사장으로부터 그런 표현을 들었다는 것이다. 설사 어느 검사장이 그와 같은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막말일 뿐 '검사들은'이라는 일반명사로 싸잡을 일은 아니다. 검사 모두가 그 인식에 동의하고 있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검사들은' 어느 검사의 막말에, 지휘부의 인정에, 언론의 비난과 찬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검사들은' 구체적 사건을 마주하는 현실의 사무실과 법정에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도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공판 토론회에 달려간 다음 끝내 뿌듯해 버리는 우리는 '십원짜리 사건론'에 동의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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