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권리 위한 연대조직 출범
건강보험 적용 등 7개 요구안 발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인 우영우 변호사는 알을 낳는 고래의 무게를 구하는 퀴즈를 냅니다. 고래는 알을 낳지 않는데 무게를 구하라는 질문에만 빠져 있으면 문제의 답은 영영 구할 수가 없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적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권과 결정권을 법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전제 설정의 오류'를 보아야 합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
지난해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었다. 이로써 임신중지(낙태) 처벌은 중단됐지만, 모자보건법의 관련 제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이 3년 가까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회가 할 일은 어떤 임신중지가 합법이고 비합법인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17일 출범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이런 요구를 위해 탄생했다.
네트워크는 이날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신중지는 이제 더 이상 처벌의 대상이 아니며 건강권과 성·재생산 권리, 사회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보완 입법 시행을 2020년 12월 31일로 정했지만, 후속 입법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관련 입법도,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은 지도 1년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도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체계적인 공식 정보를 찾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병원이 정확한 상담과 책임 있는 진료를 회피하며, 임신중지가 필요한 이들은 임신중절약을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보건·의료인, 장애여성, 노동계 인사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임신 당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의 성·재생산 권리를 이야기했다.
서 활동가는 "임신으로 찾아간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은 당황하며 (아이를) 지울 것인지를 물었다"라면서 "의료진에게도 장애여성의 임신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임신한 장애여성의 혈압이나 체온을 잴 시설조차 없었고, (장애여성이) 임신을 유지할 수도 혹은 중단할 수도 있는데 관련 정보나 지원 방법을 이야기해줄 사람도 시스템도 역시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나연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활동가는 "보건의료인에게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학적 지식은 물론 재생산 권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네트워크는 3년째 계속되는 임신중지 관련 회색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안으로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전면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및 접근성 확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 △종합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교육 실행 △사회적 낙인 해소 및 포괄적 성교육 시행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 마련 등을 내놨다.
이들은 국회뿐 아니라 관련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책임이 있는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권리보장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또 서명운동을 진행,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에 정부에 이를 전달할 계획도 세웠다. 문설희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은 "입법 공백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라면서 "법적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의 '비범죄화'가 현재의 법적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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