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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죄책감 그만…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입력
2022.08.19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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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부부 인류학자 신간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

로버트 러바인·세라 러바인 부부의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며 육아 부담을 덜라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러바인·세라 러바인 부부의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며 육아 부담을 덜라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30개월인데 아직도 엄마와 함께 잡니다. 아내에게 수면 독립을 빨리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네요. 언제부터 아이를 따로 재우셨나요?"

"유아기에 안정적 애착을 맺지 못하면 성인이 돼 인간관계가 어렵다는데 직장맘도 안정 애착 가능할까요?'

오늘도 '맘카페' 회원들은 분주하다. '육아 달인'의 조언을 구하는 간절함이 담긴 게시 글, 부부간 또는 노부모와의 엇갈리는 육아 방식을 놓고 벌이는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유식은 몇 개월째에 먹이는 게 옳은 것일까. 아이를 자주 안아주면 정말 나쁜 버릇이 들까.

미국의 부부 인류학자 로버트 러바인과 세라 러바인이 이런 초조한 질문들을 받는다면 이렇게 답하며 안심시킬 것이다. "부모의 영향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이들은 신간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를 통해 양육에서 부모의 절대적 영향력을 주장하는 서구 육아 전문가들의 논리에 도전한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명예교수인 로버트와 같은 대학원에서 연구원을 지낸 세라는 무한정한 관심과 노력이 최선의 양육이라고 믿는 미국 사회의 통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직접 거주하며 관찰·연구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양육 관습과 아동 발달·사회화에 관한 인류학적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며 양육을 두렵고 무거운 짐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는 상당 수준의 회복탄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들은 아이의 발달 단계별로 미국 현대 가정의 양육법과 세계의 다양한 양육 관습을 비교 분석한다. 이들은 '과학적'이라고 알려진 많은 아동발달이론이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과 육아 과정에서 부딪히는 위험을 극도로 과장해 왔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 연령이 높아졌다. 성과 지향적이고 정보 수요가 큰 이들이 부모가 되면서 소위 전문가들의 가설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됐다.

가령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 기대어 미국 부모들은 아이에게 따뜻하고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가 불안정해져 이후 감정적·정신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볼비의 이론은 미국이 아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유효할 것인지에 관한 예측은 담고 있지 않다. 서아프리카의 가장 큰 종족 집단인 하우사족에선 쿠냐라는 친족 회피 관습에 따라 어머니는 아기와 눈맞춤, 놀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한다. 애착이론에 따르면 부정적 영향이 염려되는 상황이지만 저자들은 이렇게 자란 아이가 정신적·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한 사례를 보여준다. 저자들이 만난 무사라는 하우사족 청년은 친족 회피 경험에도 정신건강에 아무런 문제없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이지리아 정부의 관료가 됐다. 저자들은 애착이론을 비롯한 소위 과학적 양육이론이 거대 육아 산업과 결합한 비과학적 조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린다.

아울러 자녀 양육의 세계에는 혼란스러워 보일 정도로 넓은 폭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열 살이 돼도 부모와 함께 자는 일이 흔하다. 아이들이 부모 침대에서 함께 자면 독립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미국 부모들과는 대조적이다. 멕시코 농경 사회에선 어머니가 새로 태어난 아이에만 관심을 두더라도 다른 자녀들은 알아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성장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원저의 부제는 그래서 '왜 일본 아기는 잘 자고 멕시코 형제자매는 싸우지 않으며 미국 가족은 푹 쉬어야 하는가(Why Japanese Babies Sleep Soundly, Mexican Siblings Don't Fight, and American Families Should Just Relax)'다.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스스로에게 많은 짐을 부여하는 미국 부모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수많은 양육서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한국 부모에게도 크게 와닿을 책이다. 세계의 다양한 양육 문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양육의 정답을 찾으려는 목적은 아니다. 수많은 양육 조언을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양육에 대한 시야를 넓히라는 취지다.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미국 밖 사례가 다소 개별적인 특수 사례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쏟아지는 양육 조언에 피로감을 느끼는 부모라면 일독해 볼 만하다.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로버트 러바인·세라 러바인 지음·안준희 옮김·눌민 발행·352쪽·2만8,000원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로버트 러바인·세라 러바인 지음·안준희 옮김·눌민 발행·352쪽·2만8,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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