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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도 못 간 ‘강남역 슈퍼맨’ 효과... 꽁초받이 된 빗물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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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도 못 간 ‘강남역 슈퍼맨’ 효과... 꽁초받이 된 빗물받이

입력
2022.08.2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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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강남역 등 폭우 침수 피해 심했던 곳
술집 등 밀집 지역 빗물받이 '담배꽁초' 천국
일부 가게 메뉴판 올려놓기도... 악취도 여전
"지자체 관리에만 기대선 안 돼, 시민의식 필요"

18일 밤 서울 신림역 부근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관악구 별빛신사리 거리 내 장판으로 덮인 빗물받이 등에 각종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바로 옆에 담배꽁초 수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꽁초를 버리는 시민들은 드물었다. 김재현 기자

18일 밤 서울 신림역 부근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관악구 별빛신사리 거리 내 장판으로 덮인 빗물받이 등에 각종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바로 옆에 담배꽁초 수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꽁초를 버리는 시민들은 드물었다. 김재현 기자

수도권에 시간당 136.5㎜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과 9일 전국 곳곳에서 ‘슈퍼맨’이 등장했다. 8일 시간당 100㎜의 강한 비가 내려 서울 강남역 인근 도로가 침수되자, 우산도 우의도 없이 한 남성이 맨손으로 빗물받이(배수구) 덮개를 연 뒤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쓰레기를 수거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9일에는 경기 의정부 한 도로가 침수되자 한 남성이 맨몸으로 쭈그리고 앉아 배수구 쓰레기를 치웠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강남역 슈퍼맨’, ‘의정부 슈퍼맨’으로 불렸다. 이제석광고연구소는 “꽉 막힌 배수로가 홍수를 부릅니다”라고 알리며, 빗물받이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빗물받이에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캠페인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양새다. 한국일보가 강남ㆍ신림역 일대 번화가를 살펴본 결과, 상당수의 빗물받이가 담배꽁초와 담뱃갑 등 각종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폭우 예방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수시로 빗물받이를 청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림역 빗물받이 71개 중 52개 ‘쓰레기 가득’

18일 밤 서울 신림역 부근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관악구 별빛신사리 거리 내 빗물받이 등에 한 술집의 메뉴판이 올려져 있다. 김재현 기자

18일 밤 서울 신림역 부근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관악구 별빛신사리 거리 내 빗물받이 등에 한 술집의 메뉴판이 올려져 있다. 김재현 기자

본보가 17일과 18일 폭우 피해가 컸던 서울 강남과 신림 등 시내 번화가의 빗물받이 실태를 점검한 결과, 상당수 빗물받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8일 관악구 신림역 부근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별빛신사리’ 일대 빗물받이 71개를 살펴본 결과, 52개(73.2%)가 쓰레기로 막혀 있거나 고무 재질 덮개로 덮여 있었다. 흡연 후 빗물받이에 담배꽁초를 버린 후 술집으로 들어가는 시민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그나마 양호한 빗물받이 19개는 모두 인적이 뜸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이수용(40)씨는 “폭우 피해 뒤에 빗물받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반짝 관심이 그쳤다. ‘도돌이표’ 같은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17일 밤 수도권 지역에 내린 폭우 등으로 침수 피해가 컸던 서울 강남역 부근 한 빗물받이 배수구에 담배꽁초와 우산 등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김재현 기자

17일 밤 수도권 지역에 내린 폭우 등으로 침수 피해가 컸던 서울 강남역 부근 한 빗물받이 배수구에 담배꽁초와 우산 등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김재현 기자

집중 호우로 침수 피해를 본 강남역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17일 밤 강남역 먹자골목 일대 빗물받이에는 담배꽁초, 음료수 캔, 비닐봉지 등 각종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강남 일대에서 만난 한 환경미화원은 “침수 피해 이후 쓰레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청소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면서 “거리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오전 한나절은 후딱 지나간다”고 푸념했다.

빗물받이 ‘청소’는 年 4회에 그쳐… “시민의식 병행돼야”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숨진 서울 관악구 신사동의 한 빌라 반지하 방 안이 9일 오전 물에 잠겨 있다. 배우한 기자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숨진 서울 관악구 신사동의 한 빌라 반지하 방 안이 9일 오전 물에 잠겨 있다. 배우한 기자

빗물받이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치우는 건 기본적으로 지자체 몫이다. 서울 25개 자치구는 분기별로 또는 장마철을 앞두고 연 4회가량 △담배꽁초 등 쓰레기 수거 △토사 및 퇴적물 제거 △불법덮개 수거 등 빗물받이 청소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자치구의 관리ㆍ점검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게 서울시와 자치구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관악구는 지난 6월 초 반지하 주택이 몰려 있는 신사동 일대 빗물받이를 모두 청소했지만, 불과 두 달여 만에 폭우 피해가 발생했다.

결국 길거리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지 않는 시민의식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박정음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담뱃갑에 쓰레기 투기 방지 문구를 넣고, 길거리에 별도 흡연공간과 담배꽁초 수거함을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의식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담배 한 갑당 24.4원씩(담배업체 부담) 부과되는 폐기물 부담금이 담배 관련 쓰레기 처리를 위해 온전히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간 폐기물 부담금으로 800억 원 정도를 거둬들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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