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7월 수출계약만 26조원
수출 후 사후관리는 30조원 예상
잘 키우면 수십년 '캐시카우' 가능
업체 협상력·정부 지원 늘릴 필요
수출 세계 4위(현재 8위)를 목표로 잡은 한국 방위산업 기업들이 무기 수출과 동시에 열릴 제2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를 정조준하고 있다. 수출된 무기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조성되는 '애프터마켓'은 수출 잭팟을 넘어서는 큰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23일 방산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1~7월 한국 방산 기업이 체결한 주요 수출 계약의 총규모는 약 26조 원으로 추산되고 이들 제품의 애프터마켓 규모는 수출 금액보다 큰 3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품 생산에 참여하는 중소 협력업체가 최소 300여 개에 이를 전망이어서, 방산 수출 확대와 애프터마켓 활성화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후정비 시장이 더 큰 무기산업
방산장비는 완제품 한 단위를 판매할 때마다 필수적으로 사후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소요가 발생한다. 이 사후정비와 함께 열리는 시장이 애프터마켓이다.
예컨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달 폴란드에 FA-50 경공격기 48기를 수출하기로 계약했는데, KAI는 완제품을 폴란드에 넘긴 후에도 기체 운용을 위한 후속 지원에 참여할 수 있다. 완제품 계약 규모는 30억 달러(약 4조 원)지만, KAI관계자는 “후속지원과 직접 관련된 애프터마켓 규모만 약 10조 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항공기 수명 등을 감안하면 최대 30조 원에 이를 수도 있다.
배(무기 취득가격)보다 배꼽(사후 비용)이 더 큰 이유는 무기의 특성상 운영·유지에 끊임없이 거액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신무기 도입부터 퇴역 시점까지 들어가는 비용(총수명주기비용)을 뜯어보면, 초기 획득비(개발비+생산비)가 30%, 운영유지비가 70%를 차지한다. 무기 체계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총수명주기비용의 최소 50%는 장비 운영·유지 등 애프터마켓 수요다. 수출 이후 후속 군수지원 기간이 통상 30년으로 장기간인 것도 애프터마켓이 커지는 요인이다.
한국 무기 수출 증가율 177%
한국 방산은 최근 유럽·중동·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눈부신 수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군비·군축 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제 무기 수출 실적에서 한국은 8위를 기록했다. 한국 무기 수출은 비약적으로 늘고 있어, 직전 5년(2012~2016년) 실적 대비 수출 증가율이 177%에 이를 정도다.
한국 무기가 국제 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미국 등 무기선진국 제품에 비해 성능이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싸고 △북한과의 오랜 대치 및 실전 운용을 통해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되었으며 △장비 운용 규모가 커 다른 수출국에 비해 대량의 무기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로 미국이나 러시아 무기를 들여오기 어려운 국가 입장에서도 한국산은 주요 대안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는 1월부터 지난달까지 아랍에미리트(천궁II), 이집트(K9 자주포), 폴란드(K9·K2전차·FA-50) 등과 대규모 계약이 체결되면서, 국내 방산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애프터마켓 시장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방산 분야에 15년 이상 종사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계약을 체결한 방산 장비의 사후정비 시장은 30조 원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방산 전성시대 분위기 이어가려면
국내 방산기업들은 최근 잇달아 체결한 대규모 계약을 사후정비 시장 확대로 연결해 수십 년간 안정적 매출을 보장받겠다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최근 한화그룹이 방산 계열사들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일원화하는 움직임도 △수출 증가 △사후정비 시장 확대 효과를 동시에 누리려는 포석이다. 한 방산 대기업 관계자는 “한화의 경우 △자주포(한화디펜스)△감시정찰 및 유도무기(한화시스템)△탄약(㈜한화)△엔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을 패키지 형태로 수출할 수 있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프터마켓이 커지면 완제품을 파는 대기업 외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중소업체들도 혜택을 누린다. 한화디펜스가 올해 총 872문을 수출하는 K9 자주포 생산에는 1차 협력업체 319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K9자주포는 이미 국내 수요를 대기 위한 양산이 끝났는데, 앞으로는 수출을 통해서만 중소협력사들의 지속적 부품 생산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핵심 부품을 독자기술로 개발한 중소기업들은 수출 대박의 수혜를 단단히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군포시에 있는 기술기업 제노코가 대표적이다. 제노코는 항공기 통신장비 혼선을 막는 장치를 2010년대 초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해 KAI의 FA-50에 공급하고 있다. 제노코는 현대로템 K2 전차에도 신호처리를 제어하는 감지기통합보드를 납품 중이다. 제노코 관계자는 “보수적으로 봐도 대규모 해외 수주로 인해 매년 40억~80억 원 정도의 매출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LIG넥스원이 UAE에 공급하는 유도무기 천궁II에도 국내기업 퍼스텍이 개발한 구동장치가 탑재되는데, 퍼스텍 관계자는 “UAE 수출로 800억 원 이상의 매출 증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용효과도 커 정부지원 필요
무기 제조는 산업 특성상 일반 제조업보다 취업·고용 효과가 커, 방산 수출 확대는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방산의 취업유발계수(10억 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업자 증가 수)는 8.12명으로 제조업 평균인 6.9명을 넘어선다.
전문가들은 무기 애프터마켓을 오롯이 국내 기업의 캐시카우로 삼으려면 △업체의 협상력 제고와 △정부의 수출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정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최근 무기 수출 계약 과정에서 호주,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이 기술이전 등 현지 생산을 요구하고 있어 사후정비로 생길 수익이 기대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방산업체는 내수에만 안주해 왔기 때문에 수출에 특화한 생산라인 구축 등 경험이 부족한 측면이 있어 업체들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 경로로 국내 무기 수출 활로를 뚫는 직접적 지원 외에, 정부의 간접적 지원도 필요하다. 이집트 사례에서 보듯 대형 방산물자 구매 시에 금융지원을 요구하는 국가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정부의 수출금융 등 정책 지원을 통해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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