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은 지체 없는 객관적 조사
고용부 지침은 회사에 시정기한 25일
"몇 개월이 지나도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하지 않아 결국 퇴사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는데, 회사에 과태료가 아닌 시정기한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이미 신고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장인 A씨(직장갑질119 제보 내용 중)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신고를 접수한 뒤 즉각 조사하지 않아 피해자가 고용노동부에 재차 신고를 해도 회사는 과태료 부과 대신 추가 시정기한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의 지침 자체가 이같이 직장 갑질을 방치하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사용자가 25일간의 시정기한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게 돼 있다. 25일의 기간이 있어 지체 없이 조사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한 사용자에게도 14일의 시정기한을 준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게는 △사건 발생 인지 후 지체 없는 조사 △신고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등의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길 시 각각 500만 원의 과태료와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은 이렇지만 고용부가 임의로 만든 지침이 오히려 회사에 대처할 시간을 줘 피해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직장갑질119의 주장이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조사·조치 의무 위반 때와 비교하면 판이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에는 △지체 없는 조사 △신고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금지 등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시정기한 없이 즉시 조치를 취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는 고용부가 나서서 사용자에게 추가 기회를 주다 보니 의무를 어긴 사업주에게 실질적인 과태료 부과나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14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 근로기준법이 재차 개정된 이후 올해 5월까지 고용부에 조사·조치의무 위반으로 접수된 신고는 884건인데,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을 통틀어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55건뿐이었다. 과태료 부과 건수에 사용자나 친인척의 괴롭힘이 포함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조사·조치의무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는 더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박현서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객관적인 사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가해지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고용부 지침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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