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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 사건' 또 수가로 해결? 슬의생 99즈가 와도 못 버티는 수익 구조가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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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 사건' 또 수가로 해결? 슬의생 99즈가 와도 못 버티는 수익 구조가 본질"

입력
2022.08.23 04:30
수정
2022.08.23 09: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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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 인의협 정책위원장 인터뷰
"필수의료 수가 인상·정원 확대 맥 잘못 짚었다
'행위별 수가제'로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문제
대만처럼 '총액계약제' 도입해 체계 바꿔야"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지금 같은 현실이라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의 천재 이익준 교수나 99즈(주인공 5인방)라고 해도 대학병원에서 오래 못 버팁니다. 동네에서 척추 환자를 보며 과잉진료를 하겠죠."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의 해결책을 묻기 위해 1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센터장)은 대뜸 지난해 인기 드라마였던 '슬의생' 얘기를 꺼냈다. 그는 '슬의생'을 판타지로 만들어버리는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뇌 수술을 할 수 있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 사태와 관련해 정 위원장은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고난도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사 정원 확대'는 "맥을 잘못 짚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 행위 1건당 지원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맹장수술과 개두술 수가를 각각 10만 원과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개두술 수가가 낮으니 200만 원으로 올리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300만 원으로 올려줘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맹장수술을 받는 환자가 개두술을 받는 환자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대학병원 입장에선 맹장수술이 수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 비싼 돈을 들여 개두술을 할 의사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정 위원장은 "복지부는 이번에도 수가 인상으로 해결하려고 할 텐데, 아무리 수가를 올린다 해도 구조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필수의료 인력을 대형병원이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가를 높이는 대신 병원이 필수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필수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 연간 총액 단위의 지원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만에서 시행 중인 '총액계약제'를 도입해야 병원이 필수의료에 신경 쓰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의료체계 시장화된 한국·미국서만 발생할 사건"

서울아산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아산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아산병원 사건이 한국 의료계에 준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 주요국의 병원 순위를 매기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아산병원이다. 세계 최상위권 병원의 직원이 제때 치료를 못 받았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치료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최고 수준인데 왜 이런 구조가 됐나.

"한국 의료는 병원 비용만 절감하는 구조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자에게 병원비를 깎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병원은 클리핑보다 맹장수술이 이득… 수술 줄면 의사도 줄어"

이기일(오른쪽) 보건복지부 차관이 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정책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기일(오른쪽) 보건복지부 차관이 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정책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의료단체는 필수·기피의료에 대한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다시 비용 문제로 해결하겠다는 것 아닌가. 수가가 낮다, 높다는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개두술 수가를 많이 올렸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일반환자 중 클리핑(뇌동맥류 경부클립결찰술) 수술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시장 논리에만 맡기면 아산병원 같은 대형병원이 이런 의사를 많이 고용할 필요가 없다."

-필수의료 분야에 그만큼 필요 의사를 배치하면 되지 않나.

"각 과의 인력은 복지부와 해당 학회가 결정한다. 그런데 '클리핑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몇 명 필요하다' 이런 구체적인 인력 계획은 없다. '신경외과 전체 몇 명'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구조를 '클리핑 전문의 몇 명' 이렇게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재작년만 해도 아산병원에 개두술이 가능한 교수는 4명이었다. 수술 건수가 줄고 처우가 나빠지자 2명으로 줄었다. 당장 돈이 안 되는 과의 의사는 대형병원을 나가 중소형 병원으로 가게 된다."

"의료서비스 질 높일 총액계약제, 정치권이 나서야"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현 의료체계 구조를 바꿀 대안 있나.

"상급종합병원의 지불제도를 총액계약제로 바꾸면 된다. 대만도 우리나라와 같은 행위별 수가제였는데 2003년 총액계약제로 바꿨다. 의료기관에 주는 지원금을 의료서비스 총액으로 계산해 연간 예산으로 주는 방식이다. 대신 필수의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 응급의료가 잘 작동했는지 등 서비스 질만 평가하면 된다. 정부가 심혈관센터를 짓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총액계약제가 되면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 같다.

"한국처럼 의료 행위에 인센티브를 주는 나라는 몇 안 된다. 총액계약제가 도입되면 인센티브가 많이 감소하게 돼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결국엔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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