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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밴드실?"… 광주환경공단 이상한 이미지 홍보 뒷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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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밴드실?"… 광주환경공단 이상한 이미지 홍보 뒷말

입력
2022.08.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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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사무실 4,800만 원 들여 수선 후
드럼·반주기 등 음향 기기 들여놔
여러 부서 돈 끌어다 공사비 마련
홍보 및 동호회 활성화 취지 불구
정작 공단 내 밴드 동아리는 없어
밴드실 5개월째 놀리다시피
조명 시설 두고 "노래방이냐" 비난

광주환경공단이 공단 이미지 강화와 동호회 활성화 등을 위해 조성한 밴드실에 화려한 조명 기구와 드럼이 설치돼 있다. 광주환경공단 제공

광주환경공단이 공단 이미지 강화와 동호회 활성화 등을 위해 조성한 밴드실에 화려한 조명 기구와 드럼이 설치돼 있다. 광주환경공단 제공

광주광역시 지방공기업인 광주환경공단이 최근 20평 규모의 밴드실을 만들었다. 제1하수처리장 2단계 용수동(用水棟) 내 유휴 사무실을 고친 뒤 드럼과 믹서, 반주기, 음량 파워기 등 음향 기기를 들여놓았다. 여기에 소요된 비용은 4,800여만 원. 공단은 "문화공연밴드 등 동호회 활성화와 직원 취미 활동 지원 등을 위해 밴드실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그럴싸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밴드실 조성 이후 다섯 달째 이곳에선 밴드 사운드가 좀체 들리지 않는다. 대신 밴드실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잡음만 커지고 있다. 실제 직원들 사이에선 "밴드 동아리도 없는데, 수천만 원을 들여 밴드실을 왜 만들었냐?", "밴드실을 조성하려고 편법으로 여기저기서 예산을 끌어다 썼다"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공단이 용수동 1층 빈 사무실을 '광주사업소 동호회 활동 공간(밴드실)'으로 조성키로 한 것은 지난해 12월 하순. 당시 공단은 이미지 홍보 강화와 다양한 동호회 활동 지원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후 공단은 올해 4월까지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와 실내 조명 공사, 인터넷 통신 선로 공사, 음향 기기 구매를 순차로 진행했다. 밴드실 조성에 무려 5개월이나 걸린 것인데, 이 과정을 뜯어보면 석연찮은 게 하나둘이 아니다.

당장 공단이 부족한 공사비를 여러 부서에서 벌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예산의 목적 외 사용 금지를 어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단 본예산엔 밴드실 조성 공사비가 편성되지 않았다. 그러자 공단 산하 광주사업소 광주지원팀은 같은 해 12월 이 공사를 기안하면서 사무실(밴드실) 바닥 및 내벽, 방음문 공사비 1,359만6,000원을 자체 수선 유지비로 충당했다. 광주사업소는 그러면서 올해 3월 밴드실 실내 조명 공사비(940여만 원)는 하수시설팀 수선 유지비에서 빼서 썼다. 하수처리 설비 수리 등에 써야 할 예산을 엉뚱하게 밴드실 만드는 데 쓴 것이다. 이를 두고 하수시설팀 관계자는 "사무실 내부 조명도 하수처리 시설로 판단해 공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였다.

밴드실 인터넷 구축을 위한 광케이블 포설 공사를 놓고도 공사비 떠넘기기 논란이 나온다. 공단 경영지원부는 4월 밴드실과 공단 전산실을 연결하는 광케이블 통신 선로(800m) 설치 공사를 발주하면서 A업체와 수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정작 공사비 900여만 원은 광주사업소가 자체 예산으로 부담했다. 경영지원부 측은 "경영지원부 예산에서 공사비를 집행했다"고 주장했지만, 광주사업소 예산 집행 자료엔 광주사업소가 5월 12일 A업체에게 공사비를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밴드실에 인터넷 구축이 필요한지 의문인 상황에 공단이 거짓말까지 한 셈이다.

밴드실 마이크 및 음향 기기 구매 비용 집행도 마찬가지다. 경영지원부는 당초 올해 본예산으로 회의실 마이크 및 영상 장비 구매 명목으로 자산·물품취득비 1,600만 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경영지원부는 4월 중순 이 예산으로 영상 장비 대신 드럼과 믹서, 반주기, 무선 마이크, 음량 파워기, 보면대 등 음향 기기를 사는 데 1,596만 원을 썼다. 공단의 재능 나눔 문화공연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영지원부는 예산 돌려쓰기 지적이 일자 "본예산에 기재된 '영상 장비 구매'는 (음향 기기 구매까지)포괄적 의미로 적어 놓은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놨다.

더 황당한 것은 공단이 밴드실을 만들어 놓고도 밴드 동아리가 구성되지 않아 5개월째 놀리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지원부는 "정식 밴드 동아리는 없지만 직원 4명이 일요일을 이용해 밴드실에서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말이 맞다면, 공단은 특정 직원들을 위해 4,800만 원짜리 밴드실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러나 이 주장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밴드실 관리를 맡은 광주사업소 측이 "아직까지 밴드실 이용 실적은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공단 내부에선 밴드실 내부 조명 시설을 두고 "노래방을 만들려고 한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한 직원은 "공단 이미지 홍보 강화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밴드실에 왜 사이키 조명 같은 게 달려 있는지 모르겠다"며 "혹시 노래방 같은 이미지를 대외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냐"고 꼬집었다.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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