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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재활용으로 'UN 인증'? ESG는 이렇게 부풀려졌다

입력
2022.08.24 04:30
수정
2022.08.24 09: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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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민간단체가 부여하는 환경 인증
유엔과 전혀 관계없지만 연관성 호도
기업 환경 평가 세부 내역 공개도 안 해
유엔조차 '그린워싱' 동원하는 국내 현실

[그린워싱탐정]<9>유엔 없는 'UN 인증'

편집자주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지난해 5월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보도자료는 자사의 ESG경영이 UN의 인정을 받았다는 제목을 쓰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5월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보도자료는 자사의 ESG경영이 UN의 인정을 받았다는 제목을 쓰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

“CJ대한통운 ESG경영 UN도 인정…”

지난해 5월 CJ대한통운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CJ대한통운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실천 노력이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 ‘UN 우수사례 국제 친환경 인증인 ‘GRP (Guidelines for Reducing Plastic Waste & Sustainable Ocean and Climate Action Acceleration)’에서 물류기업 최초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CJ대한통운은 자사의 폐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사업이 좋은 평가를 받아 높은 등급의 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민간기업 최초로 폐페트병을 업사이클링한 친환경 유니폼 제작’, ‘폐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친환경 재생 팰릿(운반용 상자) 도입’ 등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인증을 수여한 단체의 이름은 ‘UN SDGs협회’다.

기업의 친환경 노력은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과에 비해 홍보가 과도하고 왜곡의 취지가 있다면 이 또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는 것이야말로 그린워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국제연합, 즉 유엔조차 국내에서 기업들의 그린워싱 용도로 이용되는 사례를 여러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엔이 인증했다? 전혀 아니다

보도자료만 보면 CJ대한통운의 활동이 실제 유엔의 인정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된 친환경 인증을 만든 UN SDGs협회는 민간 단체다. 명칭부터 호도하는 의도가 읽히는 이 협회는 서울에 사무실을 둔 비정부기구(NGO)일 뿐, 유엔 산하 기구가 아니다. 유엔은 민간부문의 의견수렴을 위해 NGO들을 위한 의견수렴 창구를 열어두고 있는데, 이 협회는 유엔 산하 기관인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협의지위기구 중 하나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서 2년 이상 활동한 NGO라면 일련의 신청 절차를 걸쳐 협의지위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약 6,000개의 단체가 협의지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의 공식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을 알기 어렵다. 제목에 ‘UN도 인정’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물론, 인증 기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CJ대한통운 측에 인증을 받게 된 경위와 인증의 의미 등을 등을 질문했지만 “담당자가 퇴사해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협회 측은 2011년에 설립됐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법인이 성립된 건 2020년 6월이다. 협회가 밝힌 사업영역은 ‘전 세계 기업, 공공기관, 국회를 대상으로 SDGs 확산 지원’이다. SDGs는 유엔이 2015년 결의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뜻한다.

협회는 GRP 인증에 대해 ‘UN·EU 등의 글로벌 기준을 바탕으로 39개의 평가기준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협회 회원사나 비회원사 모두를 대상으로 수수료 없이 운영된다는 설명이다.

친환경 인증을 운영하고 있는 UN SDGs협회 사이트에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홈페이지 캡처

친환경 인증을 운영하고 있는 UN SDGs협회 사이트에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홈페이지 캡처


기업에 대한 평가 내역도 비공개

이 인증이 유엔과 큰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표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배민, UN 우수사례 국제환경인증 최우수등급 획득’이라는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일회용 수저포크 안 받기 기능 도입’, ‘B마트에 포장재·보냉재로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에틸렌(PE)필름, 물 아이스팩 사용’ 등의 활동이 인정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자료의 소제목에는 ‘우아한형제들, UN 선정 국제 친환경 인증 ‘GRP’ 최우수등급(AAA) 획득 쾌거’라 쓰여 있다. 제목과 소제목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해당 기업이 국제기구의 공식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이 받은 인증 역시 유엔이 아닌 UN SDGs협회가 부여한 것이다.

그나마 우아한형제들의 보도자료에는 인증 기관에 대한 설명이 한 구절 추가돼 있다. 협회가 ‘UN특별협의지위기구’라는 문구다. 이는 UN SDGs협회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라는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지난해 5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UN 선정 국제 친환경 인증'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들어 있다.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5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UN 선정 국제 친환경 인증'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들어 있다.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이것만 봐서는 해당 협회의 성격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유엔과의 관계도 대해서도 오인하기 쉽다.

특별협의지위라는 표현은 마치 유엔이 해당 협회를 다른 NGO보다 중요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해석상의 오류에 가깝다. 해당 지위의 명칭은 ‘특정협의지위기구(Special Consultative Status)’로 번역해야 정확하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측은 “특정분야 협의지위라는 말은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며, 포괄적인 이슈를 다루는 대규모 국제 NGO가 아닌 특정 이슈를 다루는 NGO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유엔이 2000년 전 세계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경영 실천을 유도하고자 만든 전문기구다.

협회가 평가를 운영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많은 민간기관들이 여러 분야에서 직접 기준을 세우고 인증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 역시 자체 기준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다만 인증대상 기업에 대한 세부 평가 내역 등은 공개하지 않아 인증의 정확성은 검증이 어려웠다.

그린워싱 홍보, 언론 통해 재확산

협회도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협의지위기구는 UN을 대변하거나, UN 산하기구가 아니지만’이라는 부연 설명을 해놨다.

하지만 GRP라는 인증을 받고 이를 알린 기업들 중 보도자료에 인증과 협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명시한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UN이 인정(CJ대한통운)’부터 ‘UN 자발적공약 국제 환경인증’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는 호도하는 제목만 있을 뿐이다.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니 똑같은 제목을 단 기사가 여러 개 등장한다. 검색 날짜는 8월 22일이다. 네이버 캡처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니 똑같은 제목을 단 기사가 여러 개 등장한다. 검색 날짜는 8월 22일이다. 네이버 캡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은 일부 언론사들의 기사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포털 사이트에 보도자료들의 제목을 검색하자 똑같은 제목을 단 기사가 다수 검색됐다. 조금 다른 제목의 기사일지라도 해당 기업이 유엔의 인정을 받은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은 여전했다.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보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UN SDGs협회 측은 “기업에 인증 내역을 알릴 때 정확한 정보를 담은 참고자료를 제공했지만 보도 과정에서 수정과 축약이 더해진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기업과 언론사에 수차례 이의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회도 그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협회가 한 매체에 올해 GRP 인증 내역에 대해 기고한 에, ‘74차 유엔 총회 의장에게 GRP 가이드라인이 보고되었다’는 문장이 있다. 이것만 보면 마치 당시 의장이 내용을 직접 청취했을 것 같지만, 실제 이는 이는 인증과 관련해 형식에 맞춰 메일을 주고받은 것에 가깝다.

유엔은 민간기관의 파트너십을 촉진하기 위해 사례 등록을 위한 창을 열어두었다. 사진 속 등록(Register) 버튼을 누르면 자기기입식으로 활동내역을 등록할 수 있다. 홈페이지 캡처

유엔은 민간기관의 파트너십을 촉진하기 위해 사례 등록을 위한 창을 열어두었다. 사진 속 등록(Register) 버튼을 누르면 자기기입식으로 활동내역을 등록할 수 있다. 홈페이지 캡처


협회 활동 자체에 의심의 눈초리

협회의 활동과 이에 대한 모호한 표현이 문제가 된 적은 처음이 아니다. 협회가 운영하는 ‘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가 유엔에 채택됐다는 등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2020년 유엔글로벌콤팩트 측이 이를 부인하는 내용의 공지를 한 적도 있다.

당시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유엔은 해당 지수를 채택한 바 없으며 협회가 언급하는 건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이라고 확인했다. 협회를 통해 개별 기업의 사례가 공식의견서로 채택됐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는 ‘서면의견서 제출’에 해당하며 개별 기업의 사례가 유엔의 공식의견서로 채택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유사한 사례는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2월 CJ올리브영이 발표한 ‘올리브영 사회공헌활동, UN 서면 의견서로 채택…여성·친환경 지원 노력 인정받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역시 UN SDGs 협회를 통해 ‘제출’된 의견서에 대한 것이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서민금융진흥원·충청남도경제진흥원 등과 같은 공공기관들도 유사 사례를 ‘유엔 채택’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외교부 역시 "(해당 법인의 전신인) UN지원SDGs협회에 대해 유엔과의 관계에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을만한 사항이 있어 시정조치를 요청한 바 있다"고 밝혔다.

3월 CJ올리브영이 공개한 보도자료는 자사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서면 의견서가 유엔 회의에서 채택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UN SDGs협회가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불과하다. 홈페이지 캡처

3월 CJ올리브영이 공개한 보도자료는 자사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서면 의견서가 유엔 회의에서 채택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UN SDGs협회가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불과하다. 홈페이지 캡처


ESG경영의 어두운 단면

기업들은 GRP라는 인증의 효과나 의미에 대해서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증이 기업 활동에 어떻게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상당수의 기업이 “협회에 물어보라”며 답을 회피했다. “친환경 노력에 대해 국제 기관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다”(우아한형제들) 정도가 그나마 구체적인 답변이었다.

ESG경영에서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줄곧 과장된 홍보, 즉 ESG워싱에 빠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SG경영에서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줄곧 과장된 홍보, 즉 ESG워싱에 빠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는 ESG경영 열풍의 어두운 단면이다. 경영활동의 내실을 다지는 느린 해법 대신, 성과를 부풀리는 벼락치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시도가 다면적으로 이어지면서 경영계에서는 'ESG워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활동해온 김용빈 개발마케팅연구소장은 “보도를 읽는 사람들이 아주 꼼꼼히 읽지 않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명칭이 들어간다면 쉽게 오인할 수밖에 없다”며 “모호한 표현을 쓰는 해당 협회는 물론, 명확한 검증 없이 인증을 수용하는 기업들도 이 같은 효과를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 외에도 호도하는 표현은 곳곳에 있다. 일부 기업들이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경영 평가 A등급 획득’이라는 제목의 홍보자료를 발표하는 것이 그 예다. 문장만 보면 해당 기업들이 상당히 높은 평가 또는 최상위 등급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평가등급은 S, A+, A, B+, B, C, D 등 7단계로 나뉜다. 만약 이 같은 등급체계를 언급하지 않거나, ‘A등급’ ‘최고’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면 혼동하기 십상이다.

모호한 표현을 방지할 기준이 없다면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뿐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ESG 관련 인증이나 상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떤 기준과 체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없다”며 “미국 등에서 금융상품 이름에 ‘녹색’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요건을 규정하기 시작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관련 용어를 사용해 홍보할 때 필요한 요건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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