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찾는 사람들은 사찰 입구에서 1,200여 년을 살며 절을 지켜오다 고사목이 된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보기에도 웅장한 이 나무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신라 제40대 애장왕에게는 난치병에 걸린 왕후가 있었는데 스님들의 정성스러운 기도로 완치가 됐다. 하여 왕은 그 불심에 보답하기 위해 해인사를 창건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고사목에는 전설보다 더 감동 있는 ‘생명체’가 있다. 그것은 죽은 나무가 자기 몸속에 품고 있는 ‘어린 나무’다. 절에 들어갈 때는 그늘에 가려 그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지만, 오후가 되어 한 줄기 빛이 고사목을 비추자 나무 틈 사이에서 조용히 숨어 있던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라진 고사목이 ‘둥지’가 되어 어린 새싹을 아늑하게 보듬고 있었다. 환한 햇살이 새싹을 비추니 잎들에 반짝반짝 빛이 감돈다.
천 년을 넘게 절을 지키다 이제는 고사목이 되어 어린 새싹을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는 순간 부모님이 떠올랐다. 가난한 시절 꿋꿋한 삶을 살았고, 이제는 자식들이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그 마음이 고사목을 닮았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두 손바닥을 합하며 부모님의 건강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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