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너무 편한 일만 하려고 합니다."
한 조선업체 대표가 최근 털어놓은 푸념이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재조명된 조선업계의 인력난을 설명하며 일할 사람이 없어 일감을 따오기조차 부담스럽다고 했다. 정부 진단처럼 현재 조선업계는 저임금, 고위험 등 열악한 근로환경 탓에, 이제 외국인 노동자에 기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단순히 젊은 층에게 이런 인력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대학진학률만 보더라도 이 같은 판단을 쉽게 내릴 수는 없다. 현재 고교 졸업자가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70%를 넘어섰다. 인구감소 상황을 반영하지 않으면 40대 중반인 기성세대가 진학하던 시절(1995년 기준 36%)의 2배가량 고급 인력이 쏟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이들이 근무해야 할 일자리는 아직도 고교 졸업자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국내 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제조업이 연구·개발직보다 생산직 위주로 구성돼 있는 게 대표적이다. 또 최근 공직기피 현상이 일고 있는 9급 공무원 역시 1960년대 설계 당시(5급 1부직) 고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여서, 대졸자 입장에선 역할이나 보수가 성에 찰 리 없다. 노동계에선 지금의 인력이 만족할 만한 일자리인 대기업 정규직 등은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일자리 불일치 현상은 인력이 성장할 때 산업현장은 답보해 있었다는 방증이다. 보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정부와 산업계 모두 등한시한 결과다. 조선업 위기도 결국 저가시공 등으로 현상 유지만 하다 보니, 엔지니어링 등 고수익 부문으로 탈바꿈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탓이 크다.
그 부작용은 기업 수익 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 제조업인 자동차산업만 보더라도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률이 대기업 계열 3.6%, 중견기업 2.1%, 중소기업 1.6%에 그쳤다. 10%대를 유지했던 대기업조차 10여 년 만에 수익성 감소에 시달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성적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한 국책연구기관 출신 연구원은 “대대적인 산업 개혁을 하기에 모두 부담이 커, 해당 정부의 임기 때만 아무 일 없이 끝나면 된다는 심정으로 버텨왔다”고 했다. 정부조차 당장의 상황 악화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인 정책을 펴왔다는 설명이다.
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비율을 가진 독일이 높은 인건비에도 버티는 이유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구조를 만들며 항시 경쟁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 1위 독일 부품업체 보쉬가 올 초 반도체 개발을 공식화한 것도,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제조인력 감축을 하며 전기차 시대를 준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코로나19 사태 여파, 미국의 중국 견제 등으로 지금 세계는 급속도로 미래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항시 후발주자였던 우리 입장에선 반세기 만에 대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자리 불일치를 비롯해 산업계 전반에 자리 잡은 낙후성을 단박에 씻어낼 수 있는 기회다.
물론 희생은 불가피하다. 뒤처진 산업은 축소될 수도 있고, 몇몇 일자리는 사라져 종사자 재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머뭇거린다면 더는 극복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 자녀 세대를 위해서라도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