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비장애 경계에 있는 '경계선 지능' 아동
학대피해 아동 중에서도 '복지 사각지대' 놓여
스마일게이트, 인지·심리치료 인프라 지원
임직원은 롤모델 되어주고 자립의지 심어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화제 속에서 끝났다. 이 드라마를 보고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 박모 차장은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박 차장은 5년째 결연 후원하고 있는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가명·13)이를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우영우랑 엄청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몰라요', '아빠' 두 마디밖에 못 하던 지적장애 아이가 우영우처럼 영어 본문 두 장을 통째로 다 외운다고 하면 믿어지시나?"라며 미소 지었다.
학대‧방임에 더 쉽게 노출되는 '경계선 지능 아동'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성남 작은사랑의집에서 만난 표완규 원장은 23년째 학대나 방임으로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6명의 아동이 표 원장 부부와 사회복지사 3명과 함께 산다. 이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지적 수준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사이(IQ 71~85)에 있는 '경계선 지능 아동'이다.
표 원장이 아동생활시설 원장이 된 1999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 이후 기본 의식주 해결이 안 되거나 가출한 아이들이 가정의 테두리 밖에 놓였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은 장애가 있거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동이 그룹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표 원장은 "(그룹홈 아이들의) 부모도 장애를 갖고 있거나, 미혼부모라 사회적·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가 많다"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면 유아기 때 겪는 결핍으로 지능과 사회성 발달이 느려지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의식주는 해결될지 몰라도 장애와 빈곤이 대물림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덧붙였다.
'장애' 아니라 지원 못 받고, '부모' 없으니 상황 나빠져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가 경기도 일대 아동생활시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스마일게이트 사회공헌재단 희망스튜디오는 가장 먼저 해결할 사회문제로 '복지사각지대 아동'에 초점을 맞췄다. 학대와 방임으로 부모와 따로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분리된 후 민간 시설에 맡겨진다. 여러 이유로 가정을 떠난 아이들이 생활하는 아동 양육시설(보육원, 그룹홈 등) 중 국가 시설로 운영되는 곳이 없어서다.
특히 경계선 지능 아동들은 적절한 치료로 인지능력이 개선될 수 있는데 그런 지원을 받기에는 지원이 턱없이 모자란다. 수치를 보면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 권 실장은 "국가에서 주는 돈을 계산해보니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동 1인당 1만 원 정도가 남더라"면서 "자기계발이나 지적장애 치료, 문화생활 같은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희망스튜디오는 경계선 지능 아동이 생활하는 성남 작은사랑의집에 여러 차례 찾아가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고 ①방문 심리상담‧인지치료 인프라와 ②좋은 어른과의 유대관계라는 답을 들었다. 표 원장은 "이런 도움은 꼭 필요하지만, 겉으로 표시가 잘 나지 않아서 (요청하면서도) 민간 기업이 지원해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필요한 게 그거라면 하자'고 했다.
그렇게 스마일게이트의 지원을 받아 성남 작은사랑의집 2층에는 병원에 있는 놀이치료실과 똑같은 방이 만들어졌다. 모래놀이치료부터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심리상담치료가 가능한 환경이 집으로 들어온 것.
표 원장은 "이전에는 병원 오가는 데 3, 4일은 써야 했고 이동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병원 다니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먼 길을 이동하면서 노출되는 다양한 자극에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동하면서 겪는 부담이 덜어지니 상담과 치료의 질도 올라갔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시기에도 공백 없이 치료를 이어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 아동은 정서·심리·인지 치료 효과 크게 볼 수 있어"
아이들과 피부를 부대끼며 느낀 필요성과 스마일게이트의 지원이 맞아떨어져 그룹홈 아이들의 정서와 심리 상태가 좋아지는 결실도 보였다. 스마일게이트와 전문심리상담기관이 그룹홈 아동들의 심리인지능력 검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스마일게이트의 심리정서지원사업 이전에 비해 자존감과 회복 탄력성은 각각 14%, 20% 향상되었고, 폭력성 50%, 우울‧불안은 36% 감소했다. 특히 경계선 지능 아동의 인지 능력은 크게 향상돼 평균 2.5점(10점 척도)대에 머물던 것이 4.75점대의 보통 수준으로 올라왔다.
스마일하우스 5호에서 생활하는 민준(가명‧14)이는 네 살 때 싱글대디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라면만 먹으며 생활하다 아빠의 방임으로 그룹홈에 왔다. 처음 할 수 있었던 말은 '몰라요'와 '아빠' 단 두 마디. 심리치료와 인지치료를 꾸준히 받으니 ADHD 증상과 지능 장애가 개선돼 정상 단계에 올라왔다. 표 원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알맞은 심리치료와 인지치료를 병행하면서 신경을 써주면 정상 범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20년 발표한 '아동복지시설 아동교육 사회성과 보장사업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3년 동안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는 경계선 지능 아동들을 대상으로 맞춤교육을 하자 74명 중 52.7%가 인지 능력과 사회성이 나아졌다. 인지 능력과 사회성 둘 중 한 분야만 개선된 아동도 36.5%였다.
좋은 어른과의 만남은 곧 꿈과 자립 의지
사회공헌활동 플랫폼 역할을 하는 희망스튜디오는 스마일게이트 스마일하우스와 임직원도 연결해준다. 게임회사 직원들과 그룹홈 아이들이 만나는 멘토링은 게임을 좋아하는 중·고등학교 남학생에게 '좋은 롤모델'을 만날 기회가 된다.
두 달에 한 번 스마일게이트 임직원과 스마일하우스 아동이 만나 문화 생활과 식사를 하는데, 서너 시간 게임 얘기만 실컷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의 빈자리가 있는 아이들에게 '꿈과 자립 의지'가 심어지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표 원장은 평가한다.
표 원장은 "지능 장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국가에서 전셋집과 생활비를 지원해줘도 혼자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자립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좋은 어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스마일하우스 5호에서 지내는 준호(가명‧17)는 게임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특성화고를 다니고 있다. '게임회사 삼촌들'이 오는 날에는 코딩 숙제도 확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준호는 "열심히 해서 삼촌들이 있는 스마일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봉사활동에서 의미와 보람뿐 아니라 게임을 하듯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권 실장은 "(임직원들이) 희망스튜디오 안에서도 '부캐(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를 만들고 기부 배지를 줬더니 즐겁게 참여했다"면서 게임 요소를 접목했더니 임직원과 이용자들이 참여하기 원하는 사회공헌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달 초 스마일게이트 직원 40명이 옥상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을 스마일하우스에 전달한 것도 이러한 기부 문화의 연장선이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곽아인 팀장은 "스마일하우스 아이와 결연 후원을 하는 팀원도 있고 종종 회사 직원들이 멘토링으로 스마일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을 봐왔다"면서 "조카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는 마음으로 상추, 옥수수 등 직접 기른 농작물과 함께 고기 파티할 용돈을 좀 보냈다"고 설명했다.
경계선 지능 아동부터 미등록 이주아동까지
스마일게이트는 '경계선 지능 아동'처럼 그동안 관심 밖에 있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스마일하우스도 지원하고 있다. 경기 안산에 있는 스마일하우스 2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그룹홈이다. 2016년부터 6년 동안 스마일게이트는 8개 그룹홈과 함께 여러 복지사각지대 아동을 돕고 있다.
권연주 실장은 "같은 학대‧방임 피해 아동들이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는 지역 특성상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그룹홈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이주민 부모 밑에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못한 아이들로,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민간위탁 생활시설에도 들어가기 어렵다.
권 실장은 "스마일게이트는 2002년 창업으로 시작한 회사라 창업지원부터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꾸준히 혁신적인 방법으로 진정성 있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공헌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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