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빌 게이츠가 방한해 코로나19를 포함,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다양한 논의를 가졌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지난 2년간 전 세계는 민관을 아울러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호흡기 전문의로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하지만, 다른 치명적인 감염병이 처한 현실과는 너무 달라 안타깝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결핵이다.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호흡기 감염병이다. 대한민국 국가관리 법정감염병 중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질환이기도 하다. 2000년대 누적 사망자 수는 4만8,302명. 2020년 기준 치명률은 코로나19의 7배 가까운 5.31%에 달한다. 선진적인 K방역 체계를 통해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병률 1위라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결핵이 특히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약제 내성' 때문이다. 결핵은 6개월 치료로 다수 환자들이 완치가 가능하지만 재발이나 치료 실패로 인해 치료가 더욱 까다로운 약제 내성을 가진 결핵으로 심화될 수 있다. 결핵은 약제 내성으로 인해 다제내성결핵, 광범위약제내성 이전단계 결핵,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과 같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치료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약제내성 결핵 신약들을 개발, 사용하면서 치료성공률과 환자 편의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전문가 의견과 해외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급여기준이 확대되고 삭감방지를 위한 사전심사제도가 운영되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국내 다제내성결핵은 18~20개월 걸리는 장기치료가 주를 이뤄 환자들의 고통이 크다. 세계적 추세인 6~9개월 단기치료의 빠른 도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많은 결정이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빠르게 진행된 것과 달리 결핵, 특히 다제내성결핵 같은 중증 전염성 질환은 만성질환이라는 점 때문에 과거에 만들어진 규정이나 행정절차에 얽매이고 있다. 치료기간을 크게 단축한 신약이 작년에 허가를 받고도 신속하고 전향적인 건강 보험 급여 등재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상품화된 퀴놀론 내성, 광범위 내성 신속진단 검사법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결핵 제로'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만성적인 경과로 당장 그 심각함이 보이지 않아도, 각 부처가 개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진료지침이나 과거에 마련된 행정절차 대신 전문가 의견에 따른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할 때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