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파동에 대응하는 국민의힘
근본해결보단 당헌·당규만 만지작
법치공학적 시도로는 국민 설득 못해
독재 시절이었다면 권력이 이준석 전 대표를 저렇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 경찰 국세청, 필요하면 안기부(현 국정원)까지 동원해서라도 탈탈 털고, 그래도 모자라면 친인척에 사돈의 팔촌까지 뒤졌을 거다. 죄가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다.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이런 먼지털이 과정을 견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게 당한 고위인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랬던 시절을 우리는 '정치공작(공작정치)의 시대'라 불렀다. 아주 오래전의 얘기도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폭력적, 초법적 정치공작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정치공학이었다. 매스컴이나 학자들은 정치공학이란 용어를 매우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다. 마음을 열고 정적까지 끌어안는 통 큰 정치, 표에 집착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곧은 정치와 반대되는, 음모와 모사적 행태를 일컬어 정치공학이라 한다. 눈앞의 권력쟁취와 반대파 제거를 위해, 무조건 표만 따지는 그런 정치 말이다.
사실 말이 좋아 정도이고 포용이지, 정치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정치가 원래 공학적이지 그럼 인문학적이란 말이냐'는 주장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정치가 점점 진영화, 팬덤화하고 승리를 넘어 궤멸을 목표로 하면서, 인정사정없는 공학적 셈범만 범람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애초 정치공학적이기로 치면 이준석이 으뜸이고, 지금 그의 처지는 스스로 던진 부메랑이기도 하다. 그런 이준석을 제거하기 위해 여권도 꽤나 치밀한 정치공학적 작전을 펼쳤다. 국민의힘은 대선이 끝나자 윤리위를 통해 이준석에 대한 징계절차를 개시했고, 대통령 취임과 지방선거 승리까지 확정되자 마침내 6개월 당원권 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어 권성동 직무대행체제 출범→최고위원 줄사퇴→전국위 소집→비대위 출범→주호영 비대위원장 선출 등 과정을 일사천리로 밟아 나갔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꽤 잘 짜인 시나리오와 액션플랜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준석이 낸 가처분소송 판결 하나로 모든 스텝이 꼬였다. 여권 핵심부의 정치공학은 참담한 실패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통상 어떤 시도가 완패로 끝났을 경우 원인을 진단한 다음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보통이다. 그것이 재판이라면 판결 취지를 잘 파악해 새로운 전략을 짜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여권은 똑같은 방식으로 2차 시도를 하고 있다. 예컨대 △법원이 현 국민의힘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볼수 없다고 판단했으니,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한다거나 △법원은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만 정지했기에 종전 최고위 해산은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옛 최고위체제로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등등. 계속 법규 조문(당헌·당규)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쯤되면 정치공학이 아니라 법치공학이라 하겠다. 당내 일각에서조차 이런 식으로 가면 또 진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준석을 이기려는 것인지, 판사를 이기려는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다. 이준석이 법적 대응에 나섰으니 당 역시 맞대응은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판결문을 한 글자 한 글자 해석해 다음 재판에서 피해 갈 수 있도록 당헌·당규만 붙들고 있는 집권여당의 모습이란! 이준석이 낸 두 번째 가처분조차 만약 법원이 또다시 그의 손을 들어준다면 국민의힘은 당헌·당규를 또 고칠 것인가.
이재명 대표 방탄용 당헌 개정 때문에 컨벤션 효과를 스스로 날린 민주당도 딱히 다를 건 없다. 여야 막론하고 정치가는 사라지고 법률가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로는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고, 법원이 정당 운영에 왜 개입하냐고 불평하지만, 다 자초한 일이다. 정치공학을 개탄했더니 법치공학의 시대가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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