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라자로(71)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스테파노·정진석 니콜라오·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에 이어서 네 번째 추기경이 탄생했다. 유 추기경은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를 맡은 이날 회의에서 교황청이 지난 5월 임명을 예고한 신임 추기경들의 서임식이 거행돼 유 추기경을 비롯해 모두 20명의 성직자가 로마 교회 추기경단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초 21명이 임명됐으나 원로 성직자인 루카스 반 루이 주교는 임명을 고사했다. 추기경은 천주교에서 교황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성직자로 종신직이다. 만 80세 미만 추기경에게는 교황 유고 시 새 교황을 뽑는 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교황으로 선출되는 자격도 갖게 된다. 추기경은 5월 말 기준 모두 208명이다.
마태오복음 16장 18, 19절 말씀으로 이뤄진 입당송으로 시작한 이날 서임식에서 교황은 20명의 신임 추기경들에게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훈화를 마친 교황은 추기경 임명장을 낭독했고 새 추기경들은 신앙 선서와 충성 서약 뒤 서임 순서에 따라 한 명씩 교황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빨간색 비레타와 추기경 반지, 명의 본당 지정 칙서를 받았다. 유 추기경은 두 번째로 호명돼 '부제급 추기경' 품계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그의 머리에 비레타를 씌웠다. 두 사람은 웃으며 인사를 나눴고 가볍게 포옹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6월 교황청 장관에 임명돼 현지에서 근무해왔다. 그는 장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는 한국인 성직자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건네받은 물건들은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다. 비레타는 사제들이 착용하는 윗면이 네모난 모자다. 빨간색 비레타는 추기경의 품위를 상징한다. 하느님 백성과 교회를 위해서 용기 있게 행동하고 때로는 피를 흘릴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다. 추기경 반지를 받는 것은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였던 베드로의 손에서 반지를 받음으로써 교회에 대한 추기경의 사랑이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랑으로 굳건해짐을 뜻한다. 명의 본당 칙서에는 교황이 추기경 명의로 지정하는 이탈리아 로마의 성당 또는 부제관이 명시돼 있다. 유 추기경은 로마에 있는 '제수 부온 파스토레 몬타놀라'(착한 목자 예수님 성당)를 명의 본당으로 받았다.
유 추기경은 서임식 뒤 취재진과 만나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며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교황님에게 편지를 쓸 때 내가 첫머리에 항상 쓰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역대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이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뜻을 기려 세운 논산 대건고 출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가톨릭 교회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됐다.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2005년 대전교구장직을 수행해왔고, 지난해 6월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됐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덕분에 교황청 내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도 교황청 성직자부 직원들이 서임식을 마친 유 추기경을 찾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 추기경은 29, 30일 교황이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에 참석해 추기경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병극 문화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이 추기경 서임식에 참석해 유 추기경의 서임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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