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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시간 30분의 해저 조난

입력
2022.09.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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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피시스 3호의 해저케이블 수리

1973년 수심 500m 해저에서 84시간 30분 만에 구조된 잠수정 '피시스 3호'의 승무원들. 위키미디어 커먼스

1973년 수심 500m 해저에서 84시간 30분 만에 구조된 잠수정 '피시스 3호'의 승무원들. 위키미디어 커먼스

2,000개가 넘는 통신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지만, 아직 인류는 인터넷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수요의 99%를 전선(케이블)에 의존하고 있다. 아직은 위성보다 경제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또 빠르기 때문이다. 대륙·국가 간 통신 신호를 전달하는 광(섬유) 케이블 다발들은 지금도 오대양 해저에 깔려 있고, 더러 상어 같은 짓궂은 바다 생물의 난폭한 입질이나 자연재해로 손상되기도 한다. 1858년 8월 대서양 횡단 케이블이 처음 깔린 이래 해저 케이블의 수리-보수-복구작업도 이어져왔다.

1973년 8월 29일 새벽 영국 해군 잠수정 조종사 로저 채프먼(당시 28세)과 엔지니어 로저 맬린슨이 소형 잠수정 ‘피시스(Pisces) 3호’를 타고 대서양 남아일랜드 남서쪽 240km 지점 해저로 내려간 것도 케이블 수리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길이 6m, 직경 약 2m, 높이 3m짜리 잠수정에 탑승해 자체 무게와 중력 밸러스트로 잠수, 자체 추진기로 해저를 이동하며 8시간 작업한 뒤 해상 예인선 로프로 부상할 예정이었다. 당시 현장은 잠수정이 해저에 닿는 데만 약 40분가량 걸리는 수심 488m 지점이었다.

첫 작업을 마치고 부상하려던 순간, 잠수정 선미부분에서 누수 경보가 울렸다. 순식간에 밀려든 물 때문에 잠수정 중량은 약 1톤가량 무거워졌고, 그 탓에 견인 로프가 끊겨 잠수정은 다시 해저로 가라앉았다. 잠수정 산소탱크 용량은 최대 72시간이었고, 사고 시점엔 64시간 분량이 남아 있었다.

다음날 영국·미국 해군과 캐나다 해안경비대가 공동 구조작업에 나섰고,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9월 1일 오후 1시 17분 기적적으로 잠수정 인양에 성공했다. 좁은 잠수정에 갇힌 채 산소를 아끼느라 숨조차 아껴 쉬며 만 84시간 30분을 버틴 두 사람이 구조될 무렵 잠수정에는 12분 분량의 산소밖에 없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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