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독일의 한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탔던 자폐인 가족이 출발 전 강제 퇴장된 일이 발생했다. 기내 안전을 이유로 기장이 내려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감각이 예민한 자폐인은 기내와 같이 좁은 공간에서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반복적 몸짓이나 제자리를 왕복하는 상동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승객 어머니는 계속해서 아들이 자폐인임을 알리고 안정제를 복용시키는 등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장애인식이 부족한 비장애인에 의해 자폐인의 행동은 너무 쉽게 '위험 행동'으로 규정되어 버렸다.
해당 항공사는 자폐인 가족의 강제 퇴장은 해당 사실을 사전 고지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며 승객의 탓을 했지만, 이번 사건은 항공사의 실책이 더 크다. 해당 항공사 홈페이지 어디에도 발달장애인 탑승객에 대한 안내가 없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폐인 승객 가족은 가능한 모든 조처를 했다. 아들의 장애를 알리고 기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동했지만, 항공사는 이미 마련된 국제 기준도 준수하지 않은 채 승객 탓만 하는 꼴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이미 2008년 '지원이 필요한 지적 또는 발달장애가 있는 승객'을 의미하는 DPNA 코드를 도입했다. 심지어 IATA는 장애인 등 신체적 불편함이 있는 승객을 위한 '승객 접근성 운영 매뉴얼(IPAOM)'을 2021년 2월 발표했다. 해당 항공사는 IATA 이사회의 일원이지만, 14년 전에 만든 발달장애인 탑승객 코드나 발행된 지 1년이 지난 접근성 매뉴얼 준수는 등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가 국제적 기준도 준수하지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발달장애인 탑승객 지원을 방관해 온 결과는 자폐인 승객과 가족의 피해로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결국 기내라는 공간에서 보여준 배제이자 장애인 차별이다. 부족한 장애인식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만약 항공사 홈페이지에 발달장애인 탑승객 안내가 있었다면, 항공사가 DPNA 코드를 활용했더라면, 항공사 직원과 승무원이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꼼꼼히 받았더라면, 보다 장애 친화적인 항공기 시스템이 운영되었더라면 자폐인 승객과 그 가족이 비행기에서 하차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공간이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제약이 보이지 않게 사람을 조종한다"라고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장애인은 사회적 공간에서 배제와 차별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때로 그 공간은 이번처럼 비행기가 될 수도 있고, 버스, 지하철, 식당, 학교, 직장처럼 무수하다.
공간에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가에 따라 시스템은 쉽게 달라진다. 즉, 장애인에게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다. 다양한 국민이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의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의 기본 전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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