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아마도 1990~2000년대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절로 영향을 받은 듯하다. 1990년대 우리 집의 삐삐는 아빠가 갖고 다니는 한 대뿐이었다. 내가 당시 아빠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삐삐에 연락처를 남겨,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삐삐는 연락받을 연락처를 남기거나 음성사서함에 짧은 음성 녹음을 남길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방식의 도구였다. 당시 삐삐의 음성사서함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야 사서함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숫자로 의사를 표현하는 일도 많았다.
숫자 10자리 안으로 의미를 전달해야 하다 보니 마치 암호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 빨리 연락 달라는 말은 8282라고 보낸다거나, 열렬히 사모한다는 의미의 1010235, 구구절절 할 말이 많다는 의미는 9977 등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유치하다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짧은 숫자로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와도 닮아 있다. 함축적이고 간접적이다.
나는 요새의 영화나 미디어들이 삐삐보다는 스마트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삐삐의 숫자로 마음을 표현하던 것과 같던 메타포가 사라졌다. 메타포는 그리스어 메타포라(Metaphora : 의미를 바꾸다)에 어원을 두고 있는 말로, '은유', '비유', '상징'으로 표현되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전달할 수 없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써서 표현하는 어법을 의미한다.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할 때에는 필름 릴이 워낙 고가인 데다, 후반작업 공정도 까다로웠기 때문에 촬영을 하기 직전 한 컷에 담아야 할 이미지와 연기를 계속 리허설하며, 합을 맞춘 다음 촬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담아야 할 장면들을 숙고해서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물론 요즘의 영화가 스마트폰과 닮았다는 의미는 단순히 촬영 방식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과거 사랑한다는 말은 어땠나.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이 아닌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일화처럼 과거에는 마음을 단어로 얘기하는 대신, 그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의미를 고심하며 글을 쓰거나 표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빠가 군인 시절 엄마에게 썼던 열렬한 연애 편지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빠는 본인을 '나룻배를 탄 뱃사공'으로 표현하며 엄마에 대한 마음을 고백했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 당시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지만, 편지 안에는 사랑한다는 말은 단 한 번도 쓰여 있지 않았다.
요새의 영화나 미디어 매체는 꾹꾹 눌러 필압이 남겨진 편지를 읽는 것이 아닌 간편하고 직접적인 메신저 대화 내용을 읽는 것만 같다. 더욱 화려해지고, 말끔하지만 진심이 느껴지기보다는 재미있고 빠르게 휘발된다. 어쩌면 영화, 드라마가 스마트폰과 닮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유튜브의 숏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영화는 여전히 느리고 보수적인 매체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물론 영화가 시대에 발을 맞춰 변모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지만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달이 아름답다는 말에 마음이 와닿을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고, 신중하게 그리고 사려 깊게 써 내려가길 원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