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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와 닮은 '다비 이모'... 김신영 '먹고사니즘'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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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와 닮은 '다비 이모'... 김신영 '먹고사니즘'의 달인

입력
2022.08.31 04:30
수정
2022.08.31 08: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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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신영
'전국노래자랑' 최초 여성 단독 MC
박찬욱 영화 출연에 트로트 가수로도 종횡무진
후미진 곳 삶에 현미경... 남녀노소 자유롭게 횡단
"행님아" 소년부터 다이어트 악플 딛고,
'몸'의 차별 뚫고 성장

일흔 살 넘은 가수를 연기하는 김신영은 10월부터 KBS1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다. 6월 세상을 떠난 송해 후임이다. KBS제공, 뉴스1

일흔 살 넘은 가수를 연기하는 김신영은 10월부터 KBS1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다. 6월 세상을 떠난 송해 후임이다. KBS제공, 뉴스1

붉은색 '루주'를 앞니까지 바르고 골프복을 입은 채 달려 나왔다. 비가 많이(多) 오는 날 태어나 '다비'라 불린 그는 인생사 사연 많은 둘째 이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서울 망원시장에서 샀다는 골프복을 입고 잔디가 아닌 무대를 밟은 '다비 이모'는 카메라 앞에선 예측불가다. 허리에 맨 색에서 불쑥 마이크를 꺼내 종종 이마에 대고 노래했다. 두성 퍼포먼스다. 한데 트로트 가수는 라이브보다 정작 립싱크를 즐긴다. 45년생 다비 이모는 방송인 김신영(39)의 부캐릭터. 음악방송을 마치고 넋이 나간 김신영은 거짓말 같은 전화를 송은이한테 받았다. 때는 2020년 초여름. "박찬욱 감독님이 너한테 시나리오 보여주고 싶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로 나온 김신영(오른쪽).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을 섭외하며 "불세출의 연기 천재"라고 상찬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로 나온 김신영(오른쪽).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을 섭외하며 "불세출의 연기 천재"라고 상찬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후임으로 희극인이었으면 좋겠다" 송해의 바람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출연해 충무로의 샛별로 떠오른 김신영이 이번엔 '일요일의 여자'가 된다. 김신영이 10월 16일 방송부터 KBS1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다. 1980년 문을 연 '전국노래자랑'에 여성이 홀로 프로그램을 이끌기는 처음. '27년생 송해'의 후임으로 파격 발탁된 '83년생 김신영'은 묘하게 전임자를 닮았다. 송해와 김신영은 같은 희극인으로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한 뒤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이를 눈여겨본 제작진은 6월 송해가 세상을 떠난 뒤 김신영 영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상미 '전국노래자랑' 책임프로듀서는 30일 "송해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후임은 본인처럼 희극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을 처음 맡았을 때도 '가로수를 누비며'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고 계셨는데, 김신영도 10년 동안 생방송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정오의 희망곡')을 통해 청취자들을 만나 순발력과 성실성에 믿음이 갔다"고 섭외 계기를 들려줬다.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김신영. 자막으로 '전국노래자랑'이 깔렸다. 김신영이 KBS1 '전국노래자랑' MC로 전격 발탁되자 누리꾼 사이에서 이 장면은 '예언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김신영. 자막으로 '전국노래자랑'이 깔렸다. 김신영이 KBS1 '전국노래자랑' MC로 전격 발탁되자 누리꾼 사이에서 이 장면은 '예언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전국노래자랑' 최초 단독 여성 MC로 발탁된 김신영. KBS 제공

'전국노래자랑' 최초 단독 여성 MC로 발탁된 김신영. KBS 제공

'전국노래자랑'의 촌스러운 무대에서 남녀노소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데는 탁월한 친화력을 지닌 김신영이 적임자라는 게 방송가의 평가다. 김신영의 대학 스승인 전유성은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송해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알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셨네'라고 말을 하면 관객들이 웃지만 내가 하면 웃지 않는데 그게 바로 친화력"이라며 "(김)신영이는 젊지만 그 친화력이 뛰어난 희극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온라인으로 만난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의 새 주인이 된 것에 대해 "경주 김씨 가문의 영광"이라며 웃었다. "할머니가 생전에 '넌 아직 인기 연예인이 아니야. '전국노래자랑'에 안 나가서'라고 하셨는데 하늘에 계신 할머니가 정말 뿌듯해하실 거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신영이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세신사로 상황극을 하고 있다. MBC에브리원 방송 캡처

김신영이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세신사로 상황극을 하고 있다. MBC에브리원 방송 캡처


김신영이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식당 아주머니로 상황 연기를 하고 있다. MBC에브리원 방송 캡처

김신영이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식당 아주머니로 상황 연기를 하고 있다. MBC에브리원 방송 캡처


'먹고사니즘'의 달인이 된 '웃픈' 이유

2003년 S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타 데뷔한 김신영은 20여 년 동안 서민의 삶을 깊숙이 횡단했다. 카메라가 켜지면 목욕탕 세신사가 됐고 때론 식당 아주머니로 돌변했다. 이처럼 생생한 생활 연기의 달인으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꼼꼼한 관찰력 덕분이다. 주변 인물 연구를 위해 그가 찾는 곳은 시골 장터다. "'살아봐라 이런 찌개가 맵겠냐 인생이 맵겠냐'고 하시는데 그게 명언이더라고요. 그 말맛 들으러 장터 식당을 가는 거죠." '문명특급'에서 한 김신영의 말이다.

그는 후미진 곳의 삶에 관심이 많다. 소녀 김신영은 '떠돌이'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판잣집에 살았고, 그 집마저도 사라져 목포와 청도 등 친척 집을 오가며 몸을 뉘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그의 경험은 '먹고사니즘'을 실감 나게 연기하는 밑거름이 됐다.

김신영은 코미디프로그램 '웃찾사' 코너 '행님아'에서 2004년 소년을 연기했다. SBS 방송 캡처

김신영은 코미디프로그램 '웃찾사' 코너 '행님아'에서 2004년 소년을 연기했다. SBS 방송 캡처


김신영이 2018년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이계인 성대모사를 하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김신영이 2018년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이계인 성대모사를 하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뚱뚱한 몸과 웃음은 비례하지 않아" 악플 딛고 깬 편견

김신영은 성(性)의 경계도 꾸준히 허물었다.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행님아"라고 개구쟁이 소년을 익살스럽게 연기했다. 6월 개봉한 '헤어질 결심'에선 형사로 나온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박 감독이 김신영의 행보를 캐치해 남성 중심 경찰 사회에서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여성 형사'라는 캐릭터성을 발견하고 시대가 바라는 여성의 활동상과 행보를 담아냈다"며 "'전국노래자랑' 발탁도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했다. 김신영이 예능을 넘어 음악, 영화에서까지 활약하며 요즘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김신영은 여성 희극인으로서 '몸'의 차별에서 벗어나 성장한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신영은 '개그우먼이 웃음을 포기하고 살을 뺀다'는 악플에 시달렸는데 뚱뚱한 몸과 웃음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다양한 캐릭터 플레이로 보여줬다"며 "건강한 웃음에 대한 그의 철학이 대중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라고 봤다.

방송인 김신영이 30일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고 말했다. 그는 10월부터 진행을 맡는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송해 후임 MC다. KBS 유튜브 캡처

방송인 김신영이 30일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고 말했다. 그는 10월부터 진행을 맡는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송해 후임 MC다. KBS 유튜브 캡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여성 희극인인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합류는 ①젊은 세대 중심의 세대 통합과 ②가족 중심 세계관의 다양화에 대한 열망으로도 읽힌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남성 방송인이 오락 프로그램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구조에서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진행은 방송 생태계의 다양화 전략"이라며 "남성 장년층 중심의 유머 코드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시청자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은 "송해 선생이 연장자 입장에서 세대를 아울렀다면 김신영은 젊은 세대가 중심이 돼 세대를 아우른다는 변화의 상징"이라며 "그 모습이 TV 밖 현실에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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