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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그냥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입력
2022.09.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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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달 2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새 로고를 반영한 공수처 현판 제막식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달 2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새 로고를 반영한 공수처 현판 제막식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중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국어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다만 한 차례 설교를 마친 선생님이 “너희들은 하루하루 새롭게 발전해야 한다”며 한자와 뜻을 칠판에 적었던 것 같다.

며칠 지난 국어시간, 멍한 얼굴로 졸던 나를 “일신우일신을 벌써 잊었냐”며 칠판 앞으로 불러내던 선생님 얼굴의 잔상은 흐릿하게 남아 있다. 결국엔 ‘又(우)’ 자를 쓰지 못해 흠씬 두들겨 맞은 건 기억한다. 회초리가 아닌 그 딱딱한 물건의 정체도.

2022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입에서 일신우일신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여드렸지만, 오늘을 계기로 일신우일신하는 공수처가 되고자 한다.”(8월 26일 현판식)

김 처장은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여줬다고 했지만, 사실 공수처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일단 본업 성적표부터가 낙제 수준이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요리사는 요리를 잘해야 하는데, 공수처는 수사가 시원찮다. 특히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공수처에 떼고 싶은 꼬리표가 돼 버렸다. 공수처는 7개월간 수사 공력과 인력을 사건에 몽땅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노력은 했고 일부 성과도 있지 않았냐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사건 실체는 드러난 게 거의 없었고, 그나마 기소한 손준성 검사에게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애처로운 말만 하고 있으니 더 얘기할 게 있을까 싶다. 논란이 됐던 고발장 작성자가 누군지, 공수처는 말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와 해명이 함께 할 것이다. 조직이 자리 잡지 못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수사에 숙련된 검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아직은 “아마추어”(여운국 공수처 차장)일 테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검찰 출신 수사 숙련자를 애타게 찾아도 보지만, 법으로 정해진 정원부터 채워야 하는 게 공수처의 현실이다.

조용히 일신우일신을 꾀하려 해도 주변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무능력하고 정파적인 공수처는 즉시 폐지하도록 하겠다"며 당장 '공수처 폐지'를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공수처의 핵심 권한인 이첩 요구권까지 폐지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걱정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공수처가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들어진 공수처법을 폐지하는 게 쉬운 일 아니고, 현재 기능과 인력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한다는 것 역시 만만치 않겠지만, 존재하지만 존재감을 못 느끼는 공수처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김 처장은 일신우일신과 함께 모소 대나무를 거론하면서 “지금은 축적의 시간”이라고 했다. 폭풍 성장을 위해 4년의 뿌리내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데 공수처는 과연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공수처 탄생을 목놓아 부르짖었지만 지금은 침묵하고 있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들 생각은 어떨까. 지금의 공수처를 보며 나처럼 '공수처가 탄생하기까지 투입됐던 정치 시민사회의 에너지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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