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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도 이정학도 DNA에 덜미...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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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도 이정학도 DNA에 덜미...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입력
2022.09.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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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분석기술 발전, 영구 미제 사건 풀 핵심 열쇠
DNA DB 구축으로 '추출→분석→대조' 가능해져
미제 사건 10건 중 4건은 DNA 수사기법으로 해결

대전경찰청 백기동 형사과장이 8월 30일 청내 한밭홀에서 21년 동안 미제 사건이었던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에 대한 공식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대전경찰청 백기동 형사과장이 8월 30일 청내 한밭홀에서 21년 동안 미제 사건이었던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에 대한 공식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2001년 12월 대전에서 대낮에 은행직원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하고 현금 3억 원을 빼앗아 달아난 '권총 살인강도' 사건은 21년간 미궁에 빠져 있었다. 영구 미제로 남을 것 같았지만, 증거물에서 확보한 유전자(DNA)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2001년에도 증거물에서 DNA가 발견됐지만, 당시 기술로는 검출이 불가능했다. 경찰서 물품 창고에서 잠자던 증거물은 DNA 분석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환생했다.

경찰은 2016년 이 사건을 재수사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재감정을 의뢰했고, 이듬해 손수건과 마스크에서 신원 미상의 DNA 검출에 성공했다. 상피세포 등 극소량의 DNA를 채취한 뒤 이를 증폭하는 기술이 활용됐다. 해당 DNA는 2015년 충북의 한 불법 게임장 단속 현장에서 확보한 담배꽁초에서 나온 것과 일치했다. 경찰은 5년여 동안 게임장을 드나든 종업원과 손님 등 1만5,000여 명을 일일이 대조한 끝에, 피의자 이정학을 붙잡았다. 이후 이정학 진술을 토대로 공범 이승만까지 검거했다.

DNA 분석기술은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난제'를 푸는 핵심 열쇠로 자리매김했다. 극소량의 DNA도 증폭해 감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기술이 진화한 데다, 2010년부터 범죄자의 'DNA 족보'가 축적되면서 대조 작업도 훨씬 수월해졌다.

미제 사건 44% DNA로 해결... 이춘재도 DNA로 잡았다

이춘재.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춘재. 한국일보 자료사진

DNA 분석을 통한 수사 성과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2010년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 시행에 따라 수사기관은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DB)로 저장했다. 지난해까지 DB에 남겨진 수형인 DNA(19만3,189명)와 범죄 현장 DNA가 일치해 수사가 재개된 미제 사건은 2,45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73건(43.7%)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미제 사건 10건 중 4건 이상이 DNA 수사기법의 힘을 빌려 해결된 셈이다.

'화성 연쇄살인' 진범 검거도 DNA를 활용한 수사 성과로 꼽힌다. 경찰은 2019년 7월 9차 사건(1990년)의 피해 여성 속옷에 대한 DNA 감정을 의뢰했다. 한 달 뒤 국과수는 여기서 검출된 DNA 정보가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인한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이춘재 DNA와 일치한다고 통보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당시 20세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 2020년 재수사 과정 중 피해자 신체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와 당시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수 복역 중이던 A씨의 DNA가 일치한 것으로 드러나 22년 만에 범인을 잡았다.

"0.5 나노그램 세포로도 DNA 판별 가능"

30일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 입구에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뉴스1

30일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 입구에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뉴스1

DNA 분석이 사건 해결의 도우미로 자리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0.5나노그램(20억분의 1g)의 DNA도 증폭해 감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감식 기술이 발전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는 손길만 스쳐도 DNA를 찾아낼 수 있다"고 표현했다. 땀이나 타액(침)에 섞여 있는 상피세포가 DNA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땀과 침은 증발하지만 세포는 남는다. 국과수 관계자는 "미생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되면 반영구적으로 세포를 보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2010년 DNA법 시행으로 'DNA 채취·추출→증폭→분석·대조→용의자 특정'의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오 교수는 "대전 강도살인 사건을 해결한 건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DNA 분석기법 발전, DB 축적, 경찰의 끈질긴 수사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평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DNA가 미제 사건 해결과 용의자 특정에 도움을 주고 있어 분석기술 향상과 DB 구축 등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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