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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자기 다리를 자를까?

입력
2022.09.02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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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플랫폼 횡포에 생활물가 치솟아
미ㆍEU 등 폐해 막기 위해 규제 강화
우리 정부는 한가하게 ‘자율규제’ 타령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세기 초 정유산업을 독점하던 '스탠더드 오일'을 거대 괴물 문어로 묘사한 당시 시사 만화.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제정된 셔먼법에 따라 34개 기업으로 분할됐다. 구글 캡처

20세기 초 정유산업을 독점하던 '스탠더드 오일'을 거대 괴물 문어로 묘사한 당시 시사 만화.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제정된 셔먼법에 따라 34개 기업으로 분할됐다. 구글 캡처

요즘 휴대폰 앱으로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 배달을 주문하면 최소 주문 액수가 앱에 따라 1만8,000~2만 원, 여기에 배달비가 4,000~6,000원이나 추가된다. 또 주문자가 내는 배달비만큼 치킨집도 비용을 지불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 번에 한 집에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의 경우 배달앱 플랫폼 운영자가 치킨집에서 중개수수료를 7~10%가량 더 떼어간다. 2만 원짜리 치킨은 이렇게 해서 3만 원짜리가 된다. 이 과정에서 배달 서비스의 가장 핵심인 배달 노동자가 가져가는 돈은 3,000~4,000원 남짓이다.

한때 유통 효율성을 높여 가격을 낮추는 ‘혁신’으로 평가받던 각종 온라인 플랫폼이 이제는 물가를 올리는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다. 음식 배달부터 온라인 쇼핑, 택시, 영화, 드라마 등 일상을 광범위하게 장악한 이들 플랫폼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자를 몰아낸 후 독점력을 바탕으로 가격을 제멋대로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때 유통 플랫폼이 물가를 낮춘다는 의미로 사용하던 ‘아마존 효과’에 빗대서, 오히려 물가를 높이고 있는 상황을 ‘역아마존 효과’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거대 미국 독점기업의 폐해가 부활한 것이다.

오늘날 거대 플랫폼들은 100년 전 독점기업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훨씬 은밀한 방법으로 유지하고 있다. 플랫폼의 독점력은 폭력과 뇌물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을 선점해 이용자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이들의 상호작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덕분에 플랫폼의 가치는 빠르게 성장한다. 게다가 이런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초기 우위는 영구적 독점으로 굳어지며, 인터넷을 통해 그 장악력은 쉽게 국경을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며 독점 이익을 키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전 세계 정부가 독점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규제하기 위한 5대 패키지 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유럽연합(EU)도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 및 투명성 강화 규칙‘(P2B 규칙)’을 이미 시행 중이며, 보다 강화된 ‘디지털 시장법(DMA)’이 내년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플랫폼 기업의 기업결합 신고 의무, 차별 및 자사 우대 금지, 이해충돌 금지, 데이터 이동 및 상호운용성 등의 의무를 부과하고 감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쟁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추진하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등 3개 관련 법안은 추진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는데, 대선 이후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현 정부가 ‘플랫폼 자율규제 원칙’을 내세우며, 규제 입법화보다는 자율분쟁 조정기구 설치, 자율규약 마련 등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플랫폼 기업들은 법조차도 우습게 여기는 사례가 이어져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런데 국회 통과만 남겨둔 온플법마저 폐기하고, 플랫폼 기업이 맘대로 활개 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려 하는 것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2일 인사청문회에서 온플법 폐기 문제점에 대한 입장을 묻자 “미국과 EU에 비해 우리는 관련 법규제를 잘 갖춰 놓고 있다”며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한 후 법제화를 검토하겠다”는 한가한 대답을 내놓았다.

20세기 초 미국 독점기업의 폐해가 심각할 당시 시사만화는 그들 행태를 모든 것을 움켜쥐는 ‘괴물 문어’로 묘사했다. 한 공정위원장 후보자에게 묻겠다. “정말 오늘날 괴물 문어가 된 플랫폼 기업이 제 다리를 스스로 자르고 공정한 경쟁 시장을 만들 거라 믿는가.”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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