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여자의용군교육대(여군) 창설
19세기 말 스웨덴 발트해 인근 비요크(Björkö)섬 비르카(Birka) 바이킹 유적지에서 특이한 무덤 한 기가 발굴됐다. 도끼 등 갖은 실전 무구와 암수 말 두 마리가 함께 묻힌 10세기 바이킹 고위 전사의 무덤이었다. 모두가 남성이라 여기던 그 무덤의 주인이 실은 여성이라는 주장이 1970년 스톡홀름대 연구진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골반 등 유골의 골격과 형태가 여성의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017년 웁살라대와 스톡홀름대 연구진의 DNA 분석 등에 의해 ‘비르카의 전사’는 키 170cm가량의 30대 여성으로 확인됐다.
여성 전투력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끈질겼다. 부장품은 가족·가문의 상징일 뿐 그 여성의 전사 지위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이견. 바이킹 여전사의 활약을 담은 북유럽 ‘사가(Saga, 서사문학)’도,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 여신 숭배의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근대 상비군 시대가 열린 이래 여군이 처음 활약한 전쟁은 1차대전이다. 미국은 여성 자원병을 비전투 직역에 투입했고, 러시아는 전투병으로도 활용했다. 코사크 경기병연대를 이끈 연대장급(대령) 여성(Alexandra Kudasheva)도 있었다. 중일전쟁의 영국이, 한국의 항일독립군이, 2차대전 참전국 거의 대부분이 전선과 후방에서 여군의 힘에 의지했다. 잔다르크의 조국 프랑스가 19세기 처음 여군 상비군을 창군한 이래 지금은 이슬람권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여군을 두고 있고, 여성 전투력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조사와 실험들도 여러 차례 이뤄졌다.
한국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9월 6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여자의용군교육대’를 발족했다. 대한민국 여군은 2019년 기준 1만2,600명. 그들은 적이 아니라 편견과 차별, ‘라커룸 농담’을 빙자한 성희롱 등과도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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