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끝> 미디어 스타트업 디에디트 ②
편집자주
‘일잼 포인트’는 ‘일잼 원정대’에 소개된 인터뷰이들의 ‘일하는 자아’를 분석하고, 이들만의 ‘일잘 비법’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 미디어 스타트업 '디에디트' 인터뷰 기사 읽고 오기 (관련기사 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613360003837
지난 6월, 성수동 한복판은 리뷰 미디어 스타트업 디에디트의 ‘6주년 창업 파티’에 참석하려는 구독자들로 북적였습니다. 추첨에 응모한 신청자는 무려 6,200여 명, 파티 현장엔 200여 명이 몰려들었죠. 뙤약볕이 지독하게 내리쬐는 폭염에도 말입니다. 선글라스를 낀 두 여자, 디에디트의 공동창업자 에디터 H 하경화(37)씨와, 에디터 M 이혜민(35)씨를 보기 위해 몰린 ‘찐팬’들이었습니다.
유튜브 구독자 59만 명, 뉴스레터 구독자 11만 명, 도합 70만 명의 팬을 가진 디에디트는 하루아침에 구독자가 10만 명씩 느는 ‘벼락스타’들이 난무하는 콘텐츠 업계에서 6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어요. 마케터나 에디터, 비주얼 디렉터, 브랜드 매니저 등 ‘트렌드’를 바쁘게 좇아야 하는 업계인들의 입소문을 타며 천천히 입지를 넓혀왔죠.
“투자를 받아 대규모 채용을 하고 로켓 성장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희가 원하는 건 ‘폭발적인 스케일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디에디트는 말하자면 오랜 단골들을 보유한 ‘나만 알고 싶은 맛집’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프랜차이즈가 돼 버리면 단골들이 이 집을 찾는 이유가 사라지겠죠.” (에디터 M, 이혜민 대표)
국내 뉴미디어 업계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 디에디트의 하경화(37), 이혜민(35), 김석준(34) 에디터에게 ‘단골 팬을 끌어당기는 콘텐츠 철학’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Point 1. 찐팬을 만드는 방법? 캐릭터에 올인하라!
디에디트 웹사이트에 업로드되는 모든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안녕? 에디터 B다.’ ‘안녕? 조향사 전OO이다.’ ‘안녕? 커피 칼럼니스트 심OO이다.’
서두부터 대뜸 ‘나는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지’를 밝히죠. 필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과 오랜 덕질에서 비롯된 전문성을 자랑하는데요. 디에디트의 공동창업자이자 가장 오래 글을 써온 에디터 H 경화씨는 매주 새롭게 출시된 신상 전자기기들을 소개하고, 어려운 테크 정보를 족집게 선생님처럼 쉽게 풀어 설명해요. 에디터 M 혜민씨는 주로 인테리어 아이템이나 패션, 신상 술 정보를 다루죠. 2019년부터 합류해 디에디트 웹사이트 비공식 편집장을 맡고 있는 에디터 B 석준씨는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공간과 맛집을 큐레이션하고요.
각각 IT 전문 매체와 패션잡지에서 일했던 전문성을 살렸지만, 이들이 쓰는 글은 ‘나~ 이렇게 아는 거 많다!’를 뽐내는 다른 ‘전문 칼럼니스트’들의 글과는 달라요.
일단 경화씨는 오랜 ‘앱등이(애플 제품의 마니아를 지칭하는 은어)’임을 숨기지 않아요. 애플 팬으로서의 ‘덕심’을 전면에 드러내죠. 소비자들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세부 성능에 대한 구구절절 설명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내세울 만한 가장 결정적 장점이 ‘예쁜 것’뿐이라도 사용경험이 좋았다면 솔직하게 말해요. ‘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게 가장 중요한 외모지상주의자’라고요. 한편 혜민씨는 종종 씹어먹는 고체 치약이나 2만 원짜리 고가의 안경닦이 등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불쑥불쑥 가져옵니다. ‘매일 쓰는 물건이야말로 고급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조가 십분 반영된 결과인데요. 칫솔과 치약, 가글 등 ‘입에 닿는 물건’에 진심인 그에겐 ‘양치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둘은 매체 뒤에 숨은 ‘익명의 정보 제공자’라기보단,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캐릭터’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나는 어떤 물건 앞에서 쉽게 지갑을 여는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동네에서 주말을 보내는지 모두 드러내죠. 이는 에디터 단둘이 모든 기사를 써내던 초기부터, 외부 필진이 수십 명으로 불어난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온 ‘디에디트만의 스타일’입니다. 필진들은 지난 금요일 밤 누구와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새로운 계절을 맞아 어떤 패션 브랜드 신상품을 장만했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해요. ‘안녕, OOO다’라고 인장을 박는 기사의 도입부는 사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행위기도 해요.
“결국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독자와 창작자 사이의 벽을 가장 쉽게 허물 수 있는 방법은 창작자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거예요. 자기소개를 여러 번 듣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왠지 ‘아는 사람’ 같거든요. 아는 사람 이야기는 한 번 더 귀 기울이고, 꼭 다시 찾아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뉴스레터 메일함을 열어보면, 구독자들이 보내오는 피드백이 정말 많아요. 아는 언니나 누나, 오빠나 형에게 메시지를 보내듯, 자신의 감상을 쉽게 말하는 거죠.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거예요.” (에디터 B, 김석준)
실제 디에디트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까탈로그’는 이름부터 브랜딩, 세부 디테일까지 모두 ‘구독자들의 피드백’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독자들은 ‘디에디트’를 친구나 이웃 정도로 인식한다고 해요.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실체로 보기 때문에, ‘이거 고쳐달라’, ‘저거 리뷰해달라’, ‘그 부분은 별로다’라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겁니다. 매주 자신들의 요구가 반영되는 걸 확인하면서 까탈로그에 더 큰 애정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2년 전과 지금의 까탈로그는 그 모습이 다른데요. 지금은 대부분 ‘찐팬’인 구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어져요. 레터 소제목 옆에 에디터 각자를 상징하는 픽셀 캐릭터를 넣자는 발상, 한 꼭지마다 들어가는 #푸드 #맛집 #공간 등 대분류 태그, 존댓말 대신 친근한 반말을 쓰는 콘셉트는 모두 구독자의 피드백을 받은 결과예요. 뉴스레터 아이템에도 구독자 취향이 크게 반영돼 있어요. ” (에디터 B, 김석준)
Point 2. 광고라고 다 욕먹는 건 아닙니다, ‘서사’가 있다면 OK!
미디어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합니다. 구독료이거나 광고이거나, 둘 다이거나. 디에디트는 유료 서비스를 하지 않는 대신, ‘리뷰 전문 미디어’라는 정체성을 살려 여러 기업과 협업해 광고 콘텐츠를 만들어요. 브랜드와 직접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개는 콘텐츠 중 일부에 광고를 녹이는 형식이죠.
광고는 ‘양날의 검’인데요. 분별 없이 받았다간 공들여 쌓은 매체 이미지를 해치기 십상이고, 너무 엄격히 쳐냈다간 사업의 기반이 흔들리죠. 유명 유튜버 수십 명이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던 사건만 보더라도, 광고를 다루는 태도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에디트에 ‘광고의 원칙’이란, 곧 이름난 맛집의 비밀 육수 레시피에 맞먹는 ‘영업기밀’이라고 하는데요. 보편적으로 적용할 법한 노하우를 공개하자면 ‘광고 콘텐츠를 만들 때에도 꾸준한 서사와 탄탄한 빌드업(build-up)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나 에디터 M이나 평소 애용하는 브랜드를 자주 드러내요. 내돈내산으로 써보고 ‘좋다’는 생각이 들면 영상에서 소개하는 편인데요. 예를 들어, 저는 ‘정관O’의 짜 먹는 홍삼포를 정말 좋아해요. 거의 3년째 꾸준히 먹고 있죠. 장난 삼아 ‘정관O,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얼른 연락주세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실제로 광고 제의가 들어왔죠. 그랬더니 팬들이 나서서 ‘언니! 드디어 정관O에서 연락이 왔군요!’라며 축하해주는 거예요. 에디터 M의 경우, ‘자취방 인테리어’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한 인테리어 쇼핑몰을 유독 많이 이용했는데요. 여기서도 얼마 전 광고 연락이 왔어요. ‘언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며 구독자들이 더 기뻐하더라고요.” (에디터 H, 하경화)
광고라는 이유로 구독자들이 콘텐츠에 무작정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 둘의 소비패턴을 잘 아는 팬들은 크리에이터가 좋아하는 브랜드 광고를 받게 됐을 때, 오히려 ‘환호’하기도 하죠. 창작자와 구독자들이 함께 쌓아온 서사가 광고 콘텐츠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물론 ‘디에디트라면, 양품만을 다룰 것이다’라는 신뢰가 쌓인 결과기도 하죠. 신뢰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규모가 큰 광고 건이라 할지라도, 디에디트와 두 사람이 지켜온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면 ‘고사’하는 게 원칙이라고 해요.
Point 3. 세 사는 집은 마음대로 꾸밀 수 없다, ‘내돈내산의 자가’ 웹사이트를 지켜라
디에디트는 새로운 영토에 ‘깃발’을 꽂듯, 지난 6년 동안 여러 채널을 ‘콘텐츠 플랫폼’으로 이용해왔어요. 유튜브와 뉴스레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와 브런치 등 다양한 채널을 콘텐츠 유통의 수단으로 삼았죠. 유튜브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디에디트와 디에디트 라이프 채널의 구독자 수가 누적 60만 명에 가까워지면서 이들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보는 이들도 많아졌는데요. 경화씨와 혜민씨는 강조합니다. 디에디트 정체성의 무게중심은 ‘웹사이트’에 있다는 사실을요. 이들은 블로거나 유튜버, 인스타그래머처럼 ‘특정 플랫폼을 이용하는 창작자’로 호명되길 경계합니다. 독자적인 ‘닷컴’ 기반을 가진 ‘디지털 매체’로 포지셔닝하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가장 좌절하는 순간은 ‘플랫폼이 변심했을 때’예요.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정책과 알고리즘을 바꿨을 때, 포털의 메인 편집 시스템이 개편됐을 때, 많은 크리에이터가 타격을 받았죠. 그래서 저희가 가장 중요시하는 원칙이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에디트 웹사이트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저희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건 ‘the-edit.co.kr’ 말고는 없다고 생각해요. 디에디트 웹사이트의 트래픽을 분석하면, ‘다이렉트(direct)’ 유입이 가장 많아요. 포털이나 SNS 플랫폼을 경유해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홈페이지 자체를 방문하는 사용자들이 많아진 거죠.” (에디터 H, 하경화)
한마디로 세 들어 사는 집에선 집주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작더라도 자가’인 내 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죠.
디에디트 웹사이트는 현대적인 이미지와 간결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기사의 헤드라인이 강조된 ‘블록형’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2016년 창업 당시 가장 공을 들여 고안한 레이아웃이라고 해요. 메인 페이지 구성은 곧 미디어 정체성을 단번에 보여주는 얼굴이니까요. 홈페이지 리뉴얼을 고민해봤지만, 결과적으로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의 웹사이트 레이아웃은 ‘디에디트스러움'을 보여주는 최적의 디자인이라는 뜻인 거죠.
혜민씨는 창업 초기 한 스타트업 전문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론적인 이야기지만,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의 유행은 결국 다 바뀌어요. 물론 유행을 배척하기만 해선 안 되죠. 따라는 가야 합니다. 그러나 내 중심이 없으면 자본에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트렌드만 따라가다 보면 내 색깔을 잃거나, 흡수당해 버리기 십상이에요. 그 중심에 ‘나’가 있으면 쉽게 죽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M, 이혜민)
2016년, ‘테크 리뷰 미디어’로 시작한 디에디트의 웹사이트는 현재 테크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푸드, 인테리어, 여행, 공간 등을 다루는 ‘종합 매거진’으로 외연을 넓혔어요. IT칼럼니스트, 커피 전문가, 영화평론가, 조향사, 테크 유튜버, 아웃도어 브랜드 전문가,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직으로 일하는 객원 필자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있죠. 웹사이트엔 평일 기준 매일 기사 1개를 업데이트하는 게 원칙인데요. 6년 동안 지켜온 ‘철옹성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꾸준하게 신메뉴를 내는 맛집’ 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해요.
“1년에 두 번 정도 하는 웹사이트 분석 회의에서 트래픽이 높은 게시물들을 카테고리별로 묶어요. 공간이나 푸드 카테고리의 반응이 좋았다면, 그쪽 기사를 더 보강하는 식으로 전략을 세우죠. 데이터 정리를 할 때마다 항상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이 한 두개씩은 나와요.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원소주, 포켓몬빵에 대한 기사는 당연히 잘 읽혔겠거니 예상할 수 있지만, 의외의 결과도 많아요. ‘전기 자전거의 모든 것’을 정리한 8,000자짜리 기사가 터진 건 놀라웠죠. 전기 자전거가 딱히 ‘요즘의 유행’이라고 생각하진 못했거든요. 구글 검색을 통한 유입이 많았던 걸 보면 전기 자전거에 대해 잘 정리된 쉬우면서도 전문적인 콘텐츠 자체가 부족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에디터 B, 김석준)
3, 4년 전의 디에디트와 지금은 무척 다르다고 해요. 그때만 해도 ‘테크 매체’의 정체성을 강하게 띤 곳이었는데, 지금은 딴판이죠. 웹사이트의 자체적인 트래픽을 분석해 보다 다양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편의점 신상부터, 티빙에서 꼭 봐야 할 작품 8선, 슬기로운 캠핑생활을 밝혀줄 휴대용 랜턴 3종을 한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죠.
▶ 미디어 스타트업 '디에디트' 인터뷰 기사 읽고 오기 (관련기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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