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내전 중인 예멘에서 지난 4월 초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북부 무장세력 ‘후티 반군’(자칭 안사룰라)과 반(反)후티 세력이 집결한 ‘정부군’이 유엔 중재 아래 2개월간 휴전에 합의한 것이다. 양측은 수도 사나 공항에서 민간 항공기 운항을 재개하고, 구호물자 80%가 통과하는 ‘예멘의 생명줄’ 호데이다 항구를 개방하기로 약속했다. 후티 반군은 국경 너머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도 전면 중단했다.
한시적이지만 휴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NRC)에 따르면 휴전 이후 인명 피해가 절반 이상 줄었다. 지난 3월 3일부터 4월 2일 휴전 협정이 발효되기까지 한 달간 민간인 사상자 수는 213명이었으나, 4월 3일부터 5월 2일까지는 9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기준 예멘 내전 사망자가 37만7,000명에 달한다는 유엔 통계를 고려하면, 이번 휴전이 예멘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지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2개월 휴전은 이미 두 차례 연장됐고, 현재 10월 2일까지 유효한 상태다.
이번 휴전과 맞물려 정부군이 자리 잡은 남부에선 ‘정계 개편’이 단행됐다. 사우디에서 망명 중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4월 7일 자진 사임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당시 막 출범한 ‘대통령 지도 위원회(PLC)’에 이임했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출범한 PLC는 예멘 정부군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사우디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PLC 위원 8명의 면면만 봐도 사우디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사우디와 긴밀한 관계인 라샤드 알 알리미 전 내무부 장관이 PLC 의장을 맡고, 남부 분리주의 정치조직 ‘남부과도위원회(STC)’ 수장 아이다루스 알 주바이디, 이슬람주의 정당 ‘알 이슬라(예멘개혁연합)’ 인사 2명 등이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 후티 반군에 암살당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정부군 엘리트 부대 ‘국민저항(NR)’ 사령관인 타리크 살레도 포함됐다. 누가 봐도 이질적인 정치 세력들이 불안하게 동거해 온 반후티 진영의 내분을 잠재우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PLC는 남부 세력들을 융합하고, ‘국제사회 공인정부’로 거듭나야 하는 절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남부 세력 간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중남부 샤브와 지역에선 STC와 연계된 민병대 ‘자이언트 여단’과 ‘샤브와 방위군’이 정부군 소속 특수부대와 8월 한 달 내내 격렬하게 부딪쳤다. STC를 중심으로 한 남부 분리주의 진영은 1967~1990년 독립국가로 존재했던 ‘남예멘의 부활’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원하는 정부군과 여러 차례 충돌했고, 그로 인해 지난 몇 년간 남부는 사실상 ‘내전 속 내전’ 상태였다. 이번 충돌 역시 그 내전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남남 갈등’은 단순히 ‘분리주의 대 통일파’ 구도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남부 분리주의 진영은 걸프 지역 패권국인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막대한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과거 남예멘이 아랍 세계 최초 마르크스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현재 남부 분리주의 진영에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신봉하는 ‘살라피스트’들도 가담하고 있다. PLC 위원 중 한 명인 ‘자이언트 여단’ 사령관 압둘라만 아부 자라도 살라피스트로 알려진 인물이다.
남부 분리주의 진영이 휴전 협정 체결 이후에도 샤브와 지역을 중심으로 내부 공세를 멈추지 않는 것은 이곳이 유전과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자원의 보고’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동 최빈국’ 예멘은 사우디와 UAE만큼은 아니어도 적잖은 유전과 가스가 매장된 자원 부국이다. 후티 반군이 휴전 기간 중이던 5월 13일 또 다른 유전 지대인 마리브 지역에서 정부군을 공격한 것도 ‘돈줄’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예멘의 석유 매장량은 2016년 기준 3억 배럴로 전 세계 29위다. 지구 전체 매장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가량이다. 현재 예멘 석유 소비량의 137배 규모에 달하는 유전이 ‘미개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에는 프랑스가 샤브와 지역에 외인부대를 파견해 천연가스 시설을 보호하고 가스 수출을 지원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아부바커 알 키르비 전 예멘 외무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발하프 가스 시설에서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프랑스 외인부대가 파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계속 입수되고 있다”면서 “가스 수출이 현실화하면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위기가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예멘의 미개발 유전과 가스 자원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예멘 내분과 맞물려 갈등 양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샤브와 지역 발하프 가스 시설이 현재 UAE군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당시 하디 대통령은 이 지역 무함마드 빈 아디오 주지사를 파면했는데, 무함마드 주지사가 발하프 가스 시설을 점령한 UAE군을 비판한 것에 대한 문책이라는 해석이 많다. 더구나 무함마드 주지사는 알 이슬라 소속이다. 그를 축출하는 것은 UAE의 지원을 받는 남부 분리주의 진영에겐 ‘눈엣가시’ 같은 알 이슬라 세력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마디로 ‘두 마리 토끼 잡기’인 셈이다.
알 이슬라는 이슬람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무슬림 형제단’의 예멘 버전으로 통한다.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리스트’로 공식 지정한 사우디와 UAE에는 이론적 측면에서 정적이나 다름없다. 알 이슬라를 전략적으로 다뤄 온 사우디와 달리, UAE는 애초부터 알 이슬라에 적대적이었다. 미국 용병을 고용해 알 이슬라 지도부를 암살한 적도 있다.
지난달 13일 아와드 빈 알 와지르 샤브와 주지사가 ‘샤브와 방위군’ 사령관 압둘 라보 라카브를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경질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압둘 사령관 역시 알 이슬라와 연계된 인물로, 지난 7월 19일 암살 위기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압둘 사령관은 “남부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UAE는 남부 분리주의 진영 민병대를 통해 정부군이든 알 이슬라 세력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하며 유전 지대를 확보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방해 세력이 없는 ‘청정 지역’을 만들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샤브와 지역에서 혼란이 계속되자 라샤드 PLC 의장은 8월 10일 성명을 통해 “샤브와 충돌은 우리 모두를 분쟁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며 “휴전 합의 정신에서 거리가 멀다”고 호소했다. ‘남남 갈등’의 새 격전지가 된 샤브와 지역은 PLC 정부의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 ‘세계의 분쟁지역’ 연재는 오늘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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