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 신간 '생명해류'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준 남미 에콰도르령이자 123개 화산섬인 갈라파고스제도는 최근에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시사 용어로 더 익숙하다. 갈라파고스가 생태계 보고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인 외딴 환경 조건에 빗대 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진 고립을 갈라파고스 증후군으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의 본질은 '지리적 고립'이 아닌 '생물 다양성'이다. 적어도 일본 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에게 갈라파고스는 '생명의 경이'다.
신간 '생명해류'는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직접 관찰한 신이치 교수의 탐사기다. 생물학자로서 갈라파고스에 대한 동경을 평생 품어 온 저자는 1835년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제도 곳곳을 누빈 다윈의 항로를 따라 여행길에 나선다. 갈라파고스의 무엇이 다윈의 눈을 뜨게 했을까. 남미 대륙에서 1,000㎞ 떨어진 절해의 고도에 어떻게 지금과 같은 독특하고 풍성한 생태계가 생성될 수 있었을까. 대륙의 땅거북과 달리 왜 갈라파고스땅거북만 덩치가 커졌을까. 갈라파고스의 야생 동물이 인간을 의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며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 나간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 철학의 '피시스(physis·자연)'와 '로고스(logos·분별과 이성)' 개념으로 5박 6일의 항해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목격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자 생명의 본모습은 피시스다. 그리고 이것이 로고스화된 결과가 진화론이다. 저자는 다윈이 봤던 피시스를 확인하고, 다윈이 사색을 통해 찾아낸 로고스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지 직접 증명해 보고자 했다.
책은 생명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갈라파고스에서 지금의 독특하고 풍성한 생태계가 탄생한 배경을 생명의 이타성에서 찾는다. 생명의 진화는 이타성 위에 성립돼 있다는 게 저자의 생명관이다. 생명체는 타 생명체와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상호작용하기를 원하기에 바다사자도, 이구아나도, 땅거북도 저자를 포함한 탐사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갈라파고스의 다양한 생명체를 담은 110여 장의 도판 사진과 함께 전하는 탐사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진화와 생명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갈라파고스제도는 결코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그는 "갈라파고스는 모든 의미에서 진화의 최전선이고 생명 본래의 행동을 보여주는 극장이기도 하다"며 "생명을 아는 것은 코로나19 문제를 포함해 인류 문명이 앞으로 향해야 할 미래의 각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테마"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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