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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으면 어때...나를 다독여줄 선물 같은 책

입력
2022.09.09 20: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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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서가ㆍ손목서가
소리소문ㆍ교보문고
책방 지기들의 추석 ‘선물’ 같은 책 추천

추석인데 책을 읽으라고? 연휴인데, 그럴 리가. 물론 책 몇 권 내어 드리긴 했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재충전에 목마를 때 나에게 줄 ‘선물’ 같은 책들로 골라 봤다. 의무가 아닌 기쁨이 될 책들이란 말씀. 책 고르는 게 생업인 책방 지기들의 ‘픽’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파리지앵 윤상원 종로 소요서가 대표, 시인 유진목 부산 손목서가 대표, 마흔 살 동갑내기 부부가 운영하는 제주 소리소문 정도선 대표, 교보문고 김현정 베스트셀러 담당이 우아한 글솜씨로 추천사를 보내 왔다. 마음이 혹한 책을 발견했다면, 책방을 찾아 ‘선물 잘 받았다’고 넌지시 말을 걸어 봐도 금상첨화.

1. 윤상원 소요서가 대표 추천

만남이라는 모험, 샤를 페팽 지음ㆍ타인의 사유ㆍ328쪽ㆍ1만6,800원(왼쪽). 파졸리니의 길, 피에르 아드리앙 지음ㆍ백선희 옮김ㆍ뮤진트리ㆍ272쪽ㆍ1만4,000원

만남이라는 모험, 샤를 페팽 지음ㆍ타인의 사유ㆍ328쪽ㆍ1만6,800원(왼쪽). 파졸리니의 길, 피에르 아드리앙 지음ㆍ백선희 옮김ㆍ뮤진트리ㆍ272쪽ㆍ1만4,000원

‘만남이라는 모험’

플라톤의 대화록에서 소크라테스는 늘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혼자 진실을 말하는 대신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무지를 자각하고 내면을 보게 돕는다. 소크라테스에게 만남은 철학하는 삶의 시작이자 나를 향한 물음의 첫걸음이다. “만남이라는 모험”은 이런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고 오로지 홀로 있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도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되려면 타자와의 만남에서 나를 상실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순간의 가치를 느껴보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파졸리니의 길’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과 삶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소하더라도 그의 흔적이 닿았던 곳을 찾아 작품의 신비를 헤아려보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물며 예술가의 마지막 숨이 남은 곳이라면, 심지어 그가 짓이겨진 동물처럼 사체로 발견된 곳이라면 어떨까? 저자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었던 파졸리니가 살해된 로마의 서쪽 바닷가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파졸리니가 십여 년을 보낸 프리울리에서 그의 언어와 이미지의 뿌리를 발견한다. 예술가가 걸어간 길을 쫓는 오늘의 청년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2. 유진목 손목서가 대표 추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ㆍ김영사ㆍ260쪽ㆍ1만5,800원(왼쪽).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지음ㆍ돌베개ㆍ267쪽ㆍ1만5,000원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ㆍ김영사ㆍ260쪽ㆍ1만5,800원(왼쪽).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지음ㆍ돌베개ㆍ267쪽ㆍ1만5,000원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마라’라는 말을 이렇게 풀어 이야기한다. ‘너를 사랑하지 마라’ ‘너 자신이 되지 마라’ ‘너 자신보다 중요한 것에, 너의 바깥에 있는 권력이나 그 권력의 내면화인 의무에 복종하라’. 그리하여 인격의 자발성과 자유로운 발전을 억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이념적 도구 중 하나로 우리에게 작용한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나를 사랑하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나 자신의 내면의 소명에 따르며 살아가도록 애써야 한다. 그것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는 고독이 다르게 살아 보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 ‘가치’가 있다고 쓴다. 이 계획은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만족하게 한다. 고독 속에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생각하고, 충분히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삶이 살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경향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루소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혼자일 때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곰곰이 시간을 두고 일생을 다해 대답해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다.

3. 정도선 소리소문 대표 추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설은아 지음ㆍ수오서재ㆍ348쪽ㆍ1만6,500원(왼쪽). 표범이 말했다, 제레미 모로 지음ㆍ웅진주니어ㆍ107쪽ㆍ2만5,000원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설은아 지음ㆍ수오서재ㆍ348쪽ㆍ1만6,500원(왼쪽). 표범이 말했다, 제레미 모로 지음ㆍ웅진주니어ㆍ107쪽ㆍ2만5,000원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2018년부터 3년간 진행된 관객참여형 전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관객들은 전시장에 마련된 공중전화 부스에서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녹음된 음성은 바깥에 있는 전화기로 무작위로 송출돼 지나가는 행인이 듣는다. 동명의 이 책은 녹음된 음성 중 3만 건을 추려 글로 풀어냈다. 책을 읽는 내내, 말이란 여백이 많은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꺼내기 어려워 여백 속에 숨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그림을 본 것만 같다. 커다란 공백 속 그들의 슬픔, 그리움, 사랑, 미움의 말들을 듣다 보면 깊숙이 숨겨왔던 내 감정도 말갛게 고개를 들어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표범이 말했다'

태어나고 죽는 순수한 과정 속에 개인의 삶은 그저 역사의 배경 같은 것일까. 세상을 구하려는 자도, 탐험하려는 자도, 아름다움을 좇는 자도 모두 숭고한 삶을 살아내는 기특한 역사의 일부가 아닐까. 이 책은 철학적 질문과 경이로운 자연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자 대서사시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Life'를 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코모도왕도마뱀이 물소를 물고 독이 몸에 퍼져 죽을 때까지 무려 3주를 기다려 마침내 잡아먹는 장면. 작가는 ‘도마뱀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물소와 유대감 없이 보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빠졌고 동물을 통해 인간성을 탐구했다. 죽음, 외로움, 자아 등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림은 유려하고 화사해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4.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 추천

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지음ㆍ이야기장수ㆍ68쪽ㆍ1만6,800원(왼쪽). 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ㆍ윌북ㆍ244쪽ㆍ1만6,800원

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지음ㆍ이야기장수ㆍ68쪽ㆍ1만6,800원(왼쪽). 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ㆍ윌북ㆍ244쪽ㆍ1만6,800원

‘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작가가 직접 안아주고 안긴 사람들, 그리고 오래도록 꼭 끌어안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을 담았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로 처음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은 한지민 배우, 김우빈 배우 등 낯익은 유명인들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작가가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특별하게 그려진다. 작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람을 품어 안는 따뜻한 포옹의 모습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안을 수 있는 마음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해 준다.

‘뛰는 사람’

80세에 100킬로미터 달리기를 목표한 생물학자가 쓴 ‘생물’과 ‘나이 듦’과 ‘달리기’에 관한 책이다. ‘뛰는 시간’이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달리기를 기반으로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자체 탐구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가 무언가에 꽂힌다면 모든 것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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