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가 났으니 자동차를 금지하겠단 꼴이죠. 솔직히 (반지하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겠어요.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옥탑, 고시원 말고 답이 없어요.”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공인중개사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15년 만의 폭우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뒤에야 ‘수마 비극’ 여파가 아주 작게나마 내 일상에 들어왔다. 집 구하기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가슴 아픈 뉴스 정도로 그쳤을 이야기. 뜬금없는 고백의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전세 만기까지 석 달, 마음이 조급해졌다. 새 집 이사는 내년 7월, 반 년간 몸을 누일 곳을 구해야 한다. 기준을 정해본다. ①전셋값을 빼서 중도금과 잔금을 치러야 하니 보증금은 1,000만 원 이하로 ②’영끌’한 대출금 이자부담이 기준금리 상승으로 커졌으니 월세는 50만 원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본격 손품 팔기 시작.
X방을 켜고→보증금·월세 상한선을 입력→출근이 용이한 지역을 설정하면 끝. 검색된 집은 130개. 이 중 66곳이 반지하다. 지난달 기록적 폭우 당시 관악구에서 일가족이 숨졌던 비극이 발생한 바로 그곳, 영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한국 빈곤의 상징이 된 그 ‘banjiha’ 말이다. ‘혹시 또 위험한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란 마음에 절반의 매물을 목록에서 날린다.
배(월세)보다 배꼽(관리비)이 큰 매물을 지우고, 팔을 뻗으면 손 끝에 벽이 닿을 것 같은 작디작은 방을 빼고. 한참 후에야 찾은 좁지 않은 땅 위의 집! 그러나 공인중개업소에 문의하자 “벌써 나갔어요”란 대답만 돌아왔다.
요즘 저렴한 지상층은 나오는 족족 사라진다는 게 중개사 설명이다. 물 폭탄 사태 이후 사무실을 찾은 사람 열이면 열, 지상층만 찾았단다. 그럼 이제 반지하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의 이주를 문의한 사람은 많지만 이사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한다. 반지하 주택을 순차적으로 없애겠단 서울시의 퇴출 방안 역시 “실효성 없다”고 잘라 말했다.
누군가에게 지상행은 ‘여력이 있는’ 사람의 몫이다. 주거 여건이 열악하지만 △지상보다 월세가 훨씬 저렴해서 △목돈이 없어서 △가격 대비 상대적으로 넓어서. 저마다의 이유로 반지하를 떠나지 않는(못한)다. 시가 내놓은 정책 취지는 좋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포기하고 곰팡내 가득한 곳에 살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삶까지 이해하진 못했다는 의미다.
반지하 주택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공급이 없어진다고 갑자기 따뜻한 볕이 드는 안락한 주거지로 몸을 옮길 리 없다. 종착지는 또 다른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반지하를 없앤다고 반지하의 삶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한 조각이고, 현재진행형일 ‘반지하살이’를 어쩌다 잠시 머물 곳을 찾다가 접하게 된 내가 감히 상상할 순 없을 터다. 다만 짧은 집 구하기 여정이 남긴 씁쓸한 교훈은 이렇다.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는 피한다고, 없앤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
마지막으로 영국 BBC가 인터뷰한 서울 반지하 거주 청년의 호소를 전한다. “과거 3분의 1도 안 되는 공간에 살았던 나에게 반지하는 5성급 호텔이다. 평생 벌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아무 대책 없이 반지하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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