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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식 전까지 ‘심실 보조 장치(VAD)’가 어린이 심근병증 환자 살린다

입력
2022.09.12 21: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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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신유림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신유림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심근병증 등으로 심장이식을 받기 전까지 '심실 보조 장치'가 사실상 심장 역할을 수행해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신유림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심근병증 등으로 심장이식을 받기 전까지 '심실 보조 장치'가 사실상 심장 역할을 수행해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심근병증(심근증ㆍcardiomyopathy)은 심장 구조에는 이상이 없는데 심장 근육 이상으로 심장 기능이 약해지는 질환이다. 어린이에게는 10만 명당 1명 정도 발생하는 희소 난치성 질환이다.

약물 치료로 심장 기능을 보존하거나 심부전으로 악화하는 것을 늦출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완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심장이식을 해야 한다. 심근병증 등 난치성 심장 질환인데 심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이 ‘인공 심장’으로 불리는 ‘심실 보조 장치(Ventricular Assist DeviceㆍVAD)’다.

신유림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를 만났다. 신 교수는 “VAD는 어른보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어린이 심장이식 대기자들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어린이 VAD는 체외형이어서 어른보다 유지하기 까다로워 집중적이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 어린이 VAD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5곳에 불과하다. 세브란스병원은 2017년 국내 첫 수술 후 21건의 수술을 진행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심실 보조 장치(VAD)를 설명하자면.

“VAD는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는 심실(心室ㆍventricle)을 대신해 펌프 역할을 하는 기계 장치다. 심장이식이 필요한 난치성 심장병 어린이가 이식 전까지 심장 기능을 대신한다. 크게 도관ㆍ펌프ㆍ구동 장치로 구성되며 온몸으로 혈액을 내보내는(박출) 좌심실 보조만 필요하면 좌심실 보조 장치를, 폐 순환을 담당하는 우심실 보조까지 필요하면 우심실 보조 장치까지 포함한 양(兩)심실 보조 장치를 사용한다. 양심실 보조 장치는 우심실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때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치료이지만 수술이 어렵고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린이는 심장이식에 적합한 심장을 만나기 어려워 어른보다 대기 기간이 훨씬 길다. 뇌사 공여자가 희소한 데다 어린이는 체구가 작아 공여자 체구가 중요한 고려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식 대기 동안 입원하면서 정맥 강심제 주사로 심장 기능을 가까스로 유지해야 한다. 약물 치료를 해도 심장이식을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해 이를 막는 것이 바로 VAD다.”

-VAD는 성인용과 어린이용이 서로 다른가.

“성인용 VAD는 심실 벽에 직접 부착해 체내 유지가 가능하다. 체구가 작은 어린이는 심장을 둘러싼 공간이 작으므로 VAD 도관을 심장에 넣고 피부를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 펌프로 연결하는 체외형 VAD를 사용한다. 어린이 VAD는 체외형이므로 환자는 병원에 입원해야 된다. 어른이 체내형 장비를 가지고 퇴원해 일상생활하는 것과 가장 큰 차이다. 체외형 VAD를 부착한 어린이는 펌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작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24시간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 펌프 움직임과 혈전 발생 유무를 경험이 많은 의료인이 눈으로 확인해야 된다.

가장 위험한 합병증은 VAD 펌프 내에 혈전이 생겨 온몸으로 이동하는 혈전색전증이다. 혈전색전증을 예방하려면 항응고제 치료를 병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빨리 발견하고 약물 치료를 하거나 제거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또 체외형 장비이기에 감염 위험이 높아 적절한 피부 소독과 항생제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 어린이는 성장하므로 VAD 치료 중 성장하는 체구에 맞는 VAD 보조 정도를 수시로 조절해야 하므로 집약된 치료가 필요하다.”

-VAD를 삽입해야 하는 질환은.

“VAD 삽입 수술을 진행하는 대상 질환은 심근병증이 가장 흔하다.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약해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 기능은 크게 혈액을 온몸으로 내뿜는 수축 기능과 몸을 순환한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오는 이완 기능으로 나뉜다.

심근병증에는 심장 근육이 약해지는 형태에 따라 수축 기능에 문제가 생겨 온몸으로 혈액을 내뿜지 못하고 심장이 늘어나는 ‘확장성 심근병증’, 심장 근육이 딱딱하게 굳거나 심하게 두꺼워져 심장이 혈액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후성(肥厚性) 심근병증’ 등이 있다.

이런 심장의 근육병은 약물 치료가 어렵고 병이 진행해 더 이상 전신 순환 기능 유지가 어려우면 심장이식이 필요하다. 심근병증은 발병 시기가 영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진행 속도도 다르다. 흔치 않지만 아주 어릴 때 심근병증이 발생하면 심장이식을 받아야 한다.”

-VAD 운영 기간이 병원 경쟁력 평가 지표라는데.

“세브란스병원은 최장 기간 VAD를 운영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VAD를 오래 사용하면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신경계 합병증ㆍ장치 기능 부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식이 힘든 어린이 심장 질환은 어린이에게 장치를 삽입하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섬세한 진료가 필요하다. VAD를 얼마나 오래 운영하는지가 병원 경쟁력의 평가 지표가 되는 이유다.

심근병증으로 심정지를 겪은 어린이 환자가 지난 7월에 심장이식을 받았다. 이 어린이는 생후 2개월에 심정지 상태로 세브란스병원으로 와서 에크모(체외 좌심실 보조 장치ㆍECMO) 치료를 2회 받고 심장이식을 기다렸다. 심장 기능이 악화돼 이식 대기 중 좌심실 보조 장치를 삽입 후 1년 4개월 간 유지했고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국내 최장 기간 체외형 심실 보조 장치를 운용하고 성공적으로 이식을 받았던 케이스다.”

-VAD 치료에 다학제 진료가 중요하다는데.

“VAD 치료에는 다학제 진료가 필수다. 흉부외과ㆍ소아심장과 등 다양한 진료과가 협업한다. 흉부외과는 장치 삽입 수술을 많고, 소아심장과는 수술 전후 약물 치료 등을 담당한다. VAD 삽입 후 이를 유지하는 과정도 또 다른 과제다. 전담 의료진이 24시간 내내 몸 밖에 있는 펌프를 하루 10회 이상 관찰하면서 펌프 기능, 혈전 발생 유무를 살피는 전문 치료가 이식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심장이식을 하지 않고 VAD로만 치료할 수도 있나.

“VAD는 심실 부담을 줄여주므로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VAD 삽입 후 10% 미만의 환자에게만 심장 기능이 회복된다. 보통 VAD 이식 후 2개월 뒤 심실 기능이 서서히 회복하면서 6개월 내 회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환자가 있기에 VAD 치료 중에도 심장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심장 기능 회복 여부를 계속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VAD 치료 후 회복한 첫 기록도 세브란스병원이 보유하고 있다.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로 치료 5개월 째 회복해 VAD를 제거한 뒤 3년 넘게 재발하지 않고 심장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제공


심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해 주는 ‘심실 보조 장치(VAD)’. 세브란스병원 제공

심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해 주는 ‘심실 보조 장치(VAD)’. 세브란스병원 제공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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