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훈처럼 쌍문동에서 홀어머니와 보내
2008년 만화 보다 '오겜' 이야기 떠올려
치아 6개 상실... "연출료 수천만 달러"
생애 첫 드라마의 각본을 쓰고 연출하느라 치아 6개가 빠졌다. 힘겹게 만든 9부작 드라마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세계 최고 권위 TV상 시상식에까지 초대됐고,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13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으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미국 에미상 드라마시리즈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황동혁(51) 감독의 영상 인생은 드라마 못지않게 극적이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두 중심인물 기훈(이정재), 상우(박해수)처럼 서울 쌍문동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점도 기훈을 닮았다. 상우처럼 서울대(신문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재학 시절 영화동아리 얄라셩에서 활동하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드라마 ‘다모’(2003)와 ‘지금 우리 학교는’(2022), 영화 ‘완벽한 타인’(2018)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학과와 동아리 동기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영화제작(석사)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
영화 ‘마이 파더’(2007)로 감독이 됐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을 지원한 입양아의 사연을 그린 영화다. 극장 관객은 90만 명으로 흥행하지는 못했으나 인상적인 데뷔라는 평가가 따랐다.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학대를 고발한 ‘도가니’(2011)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관객 466만 명을 모은 이 영화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실제 사건 관계자의 단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황 감독은 젊은이로 돌변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866만 명을 극장으로 모으며 영화계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김훈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남한산성’(2017)은 관객이 384만 명에 그쳤으나 백상예술대상 영화 작품상,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미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현재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은 ‘오징어 게임’의 제작자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와 황 감독의 첫 협업 작품이기도 하다. 당초 다른 감독들에게 연출 제안이 먼저 들어갔다가 황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됐다.
‘오징어 게임’은 황 감독이 2008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황 감독이 시름을 잊기 위해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 소일하다가 떠올린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영화화만 생각하고 투자배급사들 문을 두드렸으나 투자를 받지 못해 각본은 10년 넘게 서랍 속에 묻혔다. 드라마화로 방향을 튼 이후에도 제작을 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나친 폭력성을 이유로 기존 방송사들은 제작을 거부할 듯해 아예 찾지 않았다. 심의에서 자유로운 넷플릭스가 투자하며 세계적 드라마로 비상할 수 있었다.
황 감독은 여러 장르 영화에서 균일한 연출력을 발휘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 파더’와 ‘도가니’는 실화를 밑그림 삼았고, ‘수상한 그녀’는 판타지와 코미디를 섞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사극이다. 제작과 각색을 겸한 영화 ‘도굴’(2020)은 코미디가 가미된 범죄물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가져가야 할 종합예술의 특징을 잘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감독”이라며 “미술과 세트에 조예가 있고 제작자 감각까지 지녔다”고 평가했다.
황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영화 ‘K.O 클럽’을 준비 중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2024년 말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계에 따르면, 황 감독은 시즌3까지 연출하기로 계약이 이미 돼 있으며 연출료는 수천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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